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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Oct 06. 2023

오늘을 산다

서로에게 주고받은 따뜻함으로

 우리는 좋은 집에 살았다. 그 집은 햇빛이 잘 들어왔다. 바람도 잘 통했다. 넓은 집이었다. 아침마다 집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한가롭게 불어 드는 바람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늘 창가 앞에 앉아 커피 한잔했다. 그곳은 어느 카페 부럽지 않은 우리 아지트였다. 이 좋은 집을 떠나게 됐다. 자가가 아닌 전세였기 때문이다. 2년 만에 퇴장했다.


 집에 살기 전에도 전세 집에 살았다. 건물들로 빽빽이 둘러싸인 집이었다. 어둡고 답답했다. 집안 공간도 좁았다. 집에 있으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가격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살게 됐다. 이 집에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밖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덕분에 주변 맛집과 카페를 많이 알게 됐다.


 이 안 좋은 집에서 4년이나 살았다. 어느덧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왔다. 꼭 다른 집으로 이사 가고 싶었다. 집을 알아보던 중 앞에 말한 좋은 집을 찾았다. 우리는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나와 아내는 마음이 통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는 점이었다. 큰돈을 빌려야 했다.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고심 끝에 이 좋은 집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우리도 이제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싶었다. 전에 살던 집이 한몫했다. 우리 행복을 위한 투자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대출 이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우리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했다.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1년 정도 지났을까? 행복이 오래가지 못함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금리가 오른 다는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이자 부담을 줄이고자 원금 상환도 조금 했다. 역부족이었다. 이자가 처음보다 2배가 됐다. 금리는 앞으로 계속 올라갈 전망이었다. 전세 시세도 하락했다. 역전세와 전세사기 같은 불안한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그 집에 있을 수 없었다. 토요일 아침 호사는 2년 만에 내릴 준비를 해야 했다.


 일찍 집주인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은 이 집을 팔겠다고 했다. 집이 팔려야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전세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언젠가 팔리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쉽게 사라져 갔다. 몇 달 동안 수십 명이 보고 갔지만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기 일자가 다가올수록 불안해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보증금을 돌려받도록 뭐라도 해야 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해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 봤다. 듣지 않았다. 집이 팔려야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용 증명도 태어나서 처음 보내봤다. 그것도 효과는 없었다. 급기야 집주인은 부동산에 모든 걸 떠넘기고 연락을 피했다. 계속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는 몹시 분노했다.


 우리가 불리한 위치는 아니었다.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이 문제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아내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기대는 좌절로 바뀌었다.


 아내와 함께 이것저것 알아봤다. 현재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됐다. 전쟁 같은 상황에 같이 싸워 나가야 했다. 각자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내가 곁에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싶었다. 아내는 내 희망이었다. 아내 덕분에 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내에게 여러 번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갈수록 불안과 무기력이 뒤섞인 얼굴로 변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었다. 아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이에게 주면 안 될 나쁜 감정까지 전달됐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여기저기 가볼 곳이 있었다. 가보기는 하는데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갈 곳이 생기면 아이를 본가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과정이 일상이 됐다. 즐거워야 될 아이와 걷는 길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아이가 알아 차린 걸까? 아이는 전보다 더 해맑은 모습으로 자기 일상을 이야기했다. 더 웃고 더 신나게 말했다. 듣고 있으니 덩달아 나도 모르게 웃게 됐다. 잠시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와 있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었다.


 아이를 본가에 데려다주고 나왔다. 부족한 아빠에게 위로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약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씩씩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싶어 하늘만 바라봤다. 걸음은 당당히 했다.


 전세 보증금 반환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송은 최후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판결이 나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소모될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날리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원래 다음 날 변호사와 본격적인 진행을 착수하려고 했었다. 다행히 소송까지 가지 않았다. 전세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로 어려움을 겪었고 마음도 아팠다. 그럼에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 덕분이었다.


 이번 일을 안 좋게만 볼 건 아니었다. 지나고 나면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세상 혼자 살기 힘들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쉽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주고받은 따뜻함으로 말이다. 이런 것들로 오늘을 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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