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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Sep 22. 2023

배가 간질간질

네가 그러니 나도 함께

 오늘은 아이가 발표 수업 하는 날이다. 더 학교 가기 싫어하는 날이다. 급식이 맛있는 게 나와도 입맛이 떨어지는 날이다.


 아이는 학교 가기 전  아프다고 했다. 다행히 배탈은 아니었다. 긴장돼서 배가 간질 간질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도 배가 간질 간질 했다.


 일주일 전 담임선생님께서 공지하셨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회사에서도 프레젠테이션은 꺼렸다. 이 수업은 그것과 다름없었다.


 아이에게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다. 연주 실력은 생일 축하 노래 같은 짧은 노래를 칠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선택은 선생님 공지를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하기 힘든 주제는 동영상을 찍어 오라는 것이었다. 'ex) 피아노'도 눈에 띄었다. 우리 아이는 순진한 줄 알았다. 이제 컸다고 요령도 부린다. 아이에게 칭찬을 해줘야 될지 말지 헷갈렸다.


 나는 피아노 곡을 찾아봤다. 너튜브에는 모든 게 다 있었다. ‘초등학생 피아노 연주 곡 추천’이라고 검색했다. 수많은 영상들이 나왔다. 어떤 영상은 음표 따라 어느 손가락으로 건반 누르는지까지 알려줬다. 세상 좋아졌다.


 이무진 노래 ‘신호등’ 적당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검은건반을 덜 눌러도 다. 영상을 따라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연습하기 쉽게 계이름만 따로 종이에 적어 주었다.


 연습해 보니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가 긴 노래 연주 하는 건 아직 일렀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웠어야 가능했다. 연습시간도 짧았다. 피아노 연주는 아이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했다.


 얼마 전 아이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국어 수업에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가 발표하니 친구들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친구들 무반응에 속상했다. 이번 발표 수업에는 환호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싶었다. 빨리 다른 주제를 찾아봐야 했다.


 나, 아내, 아이는 서로 의견을 냈다. 장시간 토론 끝에 두 가지압축됐다. 나와 아내는 ‘동물과 식물 키우기’였다. 아이는 ‘동시 외우기’였다.


 나와 아내는 아이가 가장 잘하는 것을 고심했다. 동물과 식물 키우기가 딱이었다. 특기라고 하기에 애매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아이는 동물과 식물 키우기를 잘했다.


 어린이는 동물을 좋아한다. 키우고 싶어 한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 햄스터, 사슴벌레를 키웠다. 안타깝게 지금은 모두 운명하셨다. 현재는 달팽이를 키우고 있다. 달팽이는 작년에 아이 생일 선물로 사준 친구이다. 지금까지 건강히 잘 살고 있다. 상추 같이 부드러운 풀 아니면 잘 안 먹는다. 까다로운 녀석이다. 식욕도 왕성하다. 걱정될 정도로 몸이 거대해지고 있다.


 요즘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다. 대학교 들어가면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노래를 부른다. 애견 카페와 고양이 카페 가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만간 달팽이와 함께 우리 집에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는 식물 키우기도 좋아한다. 올해 초 방울토마토 씨를 화분에 심었다. 아이가 물을 매일 줬다. 싹이 트고 줄기가 쑥쑥 자랐다. 얼마 전에는 방울토마토 5개를 수확했다. 새로운 열매가 언제 또 열릴지 모른다. 꽃망울들이 언제든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한계를 모르게 키가 쭉쭉 크고 있다.


 아이는 동물과 식물 키우기 발표를 반대했다. 동시 외우기를 고집했다. 그 주제는 담임 선생님 예시 중 하나였다. 본인이 좋아하는  아니었다. 아이는 평소 동시 책을 보지 않았다.


 며칠 전 국어 발표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동시 외우기를 한다면 같은 결과가 예상됐다. 아이가 속상해하는 것을 또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도와줘야 했다. 아이에게 설명하고 스스로 고민하게 다.


 동물과 식물 키우기는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다. 발표하면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다. 독특한 주제이니 친구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다. 학교까지 달팽이와 방울토마토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불편함은 있다.


 동시 외우기는 단순하다. 잘 외우기만 하면 된다. 준비물도 없다. 친구들에게 무미 건조한 피드백을 받을 것이다. 외우는 것도 힘들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없다. 계속될 발표 수업이 재미없고 어렵게 기억될 것이다.


 각 주제의 장단점을 아이에게 설명했다. 생각해 보고 결정되면 알려 달라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충분히 고민해 보라고 했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내심 우리 주제 선택하기를 바랐다.


 아이는 결국 우리 손을 들어줬다. 아이는 동시 외우는 게 힘들어서 우리 것을 선택했다. 아무렴 어떤가. 아이가 발표 시간에 슈퍼스타가 될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됐다. 정작 아이는 별관심 없었다.


 다 같이 대본을 적었다. 그 내용으로 아이는 발표 연습을 했다. 확실히 본인이 잘하는 주제이니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이는 계속 본인이 잘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나와 아내는 계속해서 응원해 줬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격려뿐이었다.


 발표 수업 날 아이는 학교에 방울토마토만 가져간다고 했다. 달팽이까지 가져가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다. 가져가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자고 했다.


 방울토마토는 키가 꽤 컸다. 그 높이에 맞는 큰 쇼핑백에 담아 갔다. 교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가 들고 갔다. 교문부터는 아이가 들고 갔다. 작은 아이가 큰 짐을 들고 가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쇼핑백 안을 들여다봤다. 아이는 멋쩍어했다. 내가 괜한 걸 시켰나 싶었다.


 드디어 하교 시간이 됐다. 아이를 만나 발표 수업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꾹 참고 아이가 먼저 이야기하길 기다렸다. 오늘 급식 메뉴 같은 실없는 이야기부터 나는 꺼냈다. 대답하는 아이 목소리가 밝았다. 아침에 긴장한 모습과 달랐다. 신나서 이야기했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발표를 잘했나 보다. 안심이 됐다. 그제야 아이에게 발표 수업을 물어봤다. 친구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다. 칭찬도 들었다고 다. 대성공이다. 내 배가 더 이상 간지럽지 않았다.


 2가지를 칭찬해 줬다. 첫째는 중요한 일을 직접 고민하여 선택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선택을 믿고 끝까지 도전한 것이다. 아이는 그동안 늘 우리의 결정만 따랐다. 거기에서 벗어난 첫걸음이었다. 변하지 않는 끈기로 달라진 자신을 직접 경험했다. 새로운 한 걸음 내디딘 아이에게 고생했다고 했다. 오늘 큰 일 했으니 고양이 카페 가자고 했다. 아이는 칭찬 보다 이 보상을 더 좋아했다. 아이는 아이였다.


 지금의 날아가는 기분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기분으로 오늘을 잘 즐겼으면 한다. 이 기억이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였으면 한다. 풍성하게 쌓인 추억을 양식 삼아 유쾌하게 살았으면 한다. 마냥 해맑은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혼자 가기 전까지는 우리와 함께 걸어 가자. 우리는 언제나 함께 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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