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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Sep 15. 2023

수학이라도 좋다

고학년 가면 어차피 나도 못 푸니

 내 아이는 잘하는 줄 알았다. 엄마를 닮아 공부는 잘하는 줄 알았다.  닮아 뭐 하나 하면 끝까지 잘하는 줄 알았다. 그건 우리 희망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를 잘 몰랐다.


 아이는 수학이 어려웠다. 수학 수업 하는 날은 학교 가기 싫은 날이었다. 아이 자신감이 떨어졌다.  저학년이니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예체능도 즐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직 놀아야 될 나이라고 생각했다.


 육아 휴직 전에는 둘 다 아이 공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와 아내는 퇴근하면 파김치가 돼있었다. 아이 기본적인  챙기기에도 정신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너무 했다. 신경을 못써 아이에게 미안했다. 학원을 보냈어야 했다. 학습지를 했어야 했다. 이미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알아 다행이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이에게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저학년이니 내가 직접 도와줄 수 있었다. 내 손으로 가르쳐 주고 싶었다. 아이가 고학년 면 어차피 나도 못 푼다. 그전에 아이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 내 잘못에 대한 속죄였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 힘들 것이다. 학생들 숫자도 많고 진도를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학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었다. 나밖에 없었다.


 나는 교재를 사기 위해 서점으로 갔다. 그동안 아이 만화책은 많이 샀다. 공부책 사는 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수학 교재가 렇게 많은지 몰랐다. 표지가 화려하고 예뻤다. 책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덮을 수밖에 없었다. 두께가 뚱뚱했다. 숫자들이 빽빽했다. 혼란스러웠. 이과생으로 수년간 수학 공부를 했다. 이런 내가 자존심 상하게 그 책 앞에 무릎 꿇었다. 책 바깥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 안에 벽은 높았다. 나도 그런데 아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이 책은 나중에 필요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이를 수포자로 만들 거 같았다.


 수학 교과서를 사기로 다. 교과서가 가장 기본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수업을 했다. 교과서로 집에서 공부하면 예습, 복습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눈부신 수학 교재로부터 떠났다. 교과서를 찾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교과서 구매도 험난했다. 큰 서점에 가면 다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다. 교과서는 정해진 기간에만 판매했다. 기간이 이미 지났다. 내가 너무 늦었다.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로 나뉜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서 만든다. 검정교과서는 민간 출판사에서 만들면 교육부 검정을 받는다. 나 때는 교육부 책만 있었는데 많이 바뀌었다.


 아이 수학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였다. 국정교과서는 당연히 교육부에서 판매할 라 생각했다. 한참을 교육부 사이트에서 기웃거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교과서의 ‘교’ 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녹색 창의 힘을 빌렸다. 국정교과서는 과목 별로 각 민간 출판사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교과서 사는 과정도 수학만큼이나 어려웠다. 이 우왕좌왕 에서 수학책을 실수로 2권  건 비밀이다.


 이제 책은 다 준비가 되었다. 아이와 함께 공부만 하면 다. 나는 미리 교과서를 쭉 훑어봤다. 깜짝 놀랐다. 나 때와는 많이 달랐다.


 내 시절 ‘산수’ 교과서는 공식과 숫자로만 가득했다. 지금 ‘수학' 교과서는 숫자, 그림,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처럼 단순히 공식 외워 문제 푸는 것이 아니었다.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재밌는 삽화나 예화로 접근이 쉽게 하였다. 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알려주기도 다. 교과서가 많이 친절해졌다. 나도 이 책으로 수학 공부 했으면 더 잘했을 다. 진짜다.


 아이와 공부해 보니 마음이 앞섰다. 점점 다급해졌다. 아이가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앞 학년에서 배운 내용부터 다시 해야 했다. 작년 담임 선생님께서 수학에 대해 언급이 없으셨다. 아이가 잘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정신없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관심 갖지 않았다. 이런 내가 미웠다. 아이에게 다시 한번 미안했다.

 

 불현듯  대학교 때가 생각났다. 방학이 지나면 그전에 배웠던 내용이 머릿속에 깨끗하게 삭제가 다. 학점 잘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과제도 빠지지 않고 했었다. 방학만 지나면 모든 것이 포맷되었다.

 

 학기 초만 되면 교수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했다. 많은 학생이 공통적으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나 보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배운 걸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공부하면 된다. 다시 보면 이해의 속도가 더 빠르다. 잊어버리면 다시 하면 된다. 모르면 알 때까지 하면 된다. 뭐든 반복, 숙달해서 못할 일은 없다. 아이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면 된다. 아빠랑 함께 하니 외롭지 않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몰라도 넘어간다. 아빠와 같이 공부하면 안 그래도 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다. 이해될 때까지 계속 물어볼 수 있다. 공부하다가 골치 아프면 잠깐 쉴 수도 있다. 놀고 싶으가끔 신나게 놀 수도 있다. 오늘 하루 열심히 했으면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 창피할 것도 없다. 눈치 볼 것도 없다. 맘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곁에 있다.


 나 때는 틀리면 빨간색 색연필로 사선을 그었다. 나도 습관적으로 틀린 문제에 빨간 선을 그으려고 했다. 아이는 틀린 문제는 나두라고 했다. 다시 한번 풀어보겠다고 다. 왜 그런지 물어봤다.  선이 상처를 준다고 다.


 나도 그 빨간 선이 줬던 아픔이 떠올랐다. 교육적인 의미로 그었을 것이다. 그 선은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마음을 찔렀다. 꽤나 강렬했었다. 아직도 그 감정이 남아 있는 게 놀라웠다. 아이 부탁대로 했다. 아이는 다시 풀었다. 다시 동그라미로 채워졌다. 이 방법이 더 교육적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하나 배웠다.


 아이는 차츰 수학에 익숙해졌다. 틀리는 문제보다 맞는 문제가 더 많아졌다. 다 맞을 때도 있었다. 아마도 엄마 닮아 빠르게 배웠을 다. 아이 얼굴에 기쁨이 보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아이가 수학 수업 시간에 앞으로 당당할 수 있었다. 안심이 됐다.


 단순히 수학 문제 맞히는 즐거움만 있지 않았으면 했다. 어려운 수학도 공부하면 잘할 수 있었. 그 자신감이 아이에게 자리 잡았으면 했다. 이 용기가 국어도, 줄넘기도, 방송 댄스도, 친구들과 노는 데도 이어졌으면 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즐겼으면 했다. 아이가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수포자가 될 뻔했다. 나와 함께 극복한 것이 몹시 뿌듯했다. 무엇보다 아이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더한 게 좋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수학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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