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자극추구 2점, 위험회피 100점
이런 특별함은 썩 달갑지 않은
내 MBTI는 INFJ이다. 검사 결과에는 ‘통찰력 있는 선지자’, ‘옹호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INFJ의 특징은 목표 달성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다.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잘한다. 내가 선지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건 맞다.
우연히 TCI라는 기질 및 성격검사도 해봤다. 검사 결과 중 자극추구 백분위는 2점이었다. 위험회피는 100점이었다. 내가 좋아해도 위험이 따르면 피한다. 모험은 안 한다. 말만 들어도 재미없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해석하는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특별함은 썩 달갑지 않다.
나는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내게 육아 휴직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모험이었다. 누군가에게 쉬운 선택 일 수 있다. 내게는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난 남이 가는 길로만 갔다. 그 길이 가장 안전했다. 중간은 간다고 생각했다. 그 편안한 길을 벗어나는 건 생각 안 해봤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그랬다. 평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몰랐다.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남이 인정하는 것으로 내 삶을 채웠다. 그걸로 만족했다. 남 평가에 신경 쓰고 살아왔다.
다른 사람은 내게 큰 관심이 없을 거다. 난 존재하지 않는 남 평판을 꼬박꼬박 신경 썼다. 철저히 자기 검열을 했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넘어야만 했다. 그래야지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육아 휴직 할 기회는 이미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아내의 출산 후 육아 휴직이 끝날 때쯤이었다. 아내는 내게 육아 휴직을 제안했다. 이때 내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소리는 경제적 문제였다. 우리는 쭉 전세살이를 했다. 셋이서 겨우 살만한 집이었다. 그래도 대출이 필요했다. 대출 갚고 세 식구가 살려면 내 수입이 꼭 필요했다. 우리 가족의 씀씀이는 적었다. 늘 빚이 발목을 잡아왔다.
또 다른 소리는 회사에서 내 자리 문제였다. 매달 월급 잘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녔다. 육아휴직 하면 그 안정적인 자리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다. 날 책임져 줄 것이 없었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었다.
내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 자신감은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됐다. 삶의 원동력이 됐다. 놓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나만의 자부심인 걸 잘 안다. 당시에는 그렇게 착각 속에 살았다.
마지막으로 들리는 내 마음 소리는 용기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 앞 이유들은 핑계에 불과했다. 막상 그때 가보면 잘 풀릴 수 있다. 잘 안 돼도 대안은 있었다. 내가 안정과 헤어질 깡이 없는 게 본질이었다. 내 사전에는 모험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실존하지 않는 남 평가를 상상했다. 내 검열 기를 그때도 열심히 돌렸다.
두 번째 육아 휴직 기회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이번에도 아내 제안이 있었다. 더 강력한 제안이었다. 난 다르지 않은 이유로 망설였다. 미래의 불확실을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육아 휴직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를 계속 찾고 있었다. 도망가기 바빴다. 아내는 답답했다. 한참을 벌인 격론 끝에도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지쳐 둘 다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흐지부지 귀중한 시간을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