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생명의 빛이 점차 보였다. 어둡지만 안전한 곳에서 반짝이는 것이 누워 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얼굴도 보였다. 몸도 보였다. 손발도 보였다. 우리에게 인사하듯 꾸물꾸물 움직였다. 우렁찬 심음이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알려줬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검사를 했다.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단지 기계가 만든 검은색과 흰색의 상이었다. 그 모습을 마주할 때면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부성애라고는 말 못 하겠다. 무표정한 내 얼굴도 웃게 하는 그것이었다. 내 심장도 뛰게 하는 무엇이었다.
아이는 사진 속에서 평면이지만 입체적이었다. 곧 마주할 우리 생명체를 상상하게 했다. 어렴풋이 난 아이 얼굴을 떠올렸다. 만남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이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빠를 닮아 입이 튀어나온 거 같네요.”
내가 입이 튀어나온 건 확실했다. 초음파 사진을 여러 번 봤다. 아이 입이 나온 지 잘 모르겠다. 전문가 말씀이니 신뢰할 수밖에... 마음 한구석에서 선생님이 잘 못 보셨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가 편안한 그곳에서 열 달을 채웠다. 어느 날 세상으로 나오는 문을 두드렸다. 힘찬 울음소리가 분만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알리고 있었다. 그 우렁찬 소리가 시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줬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와 산모 모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셨다. 모두 이상이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내쉬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을 쓸어내리며 짧은 한마디가 나왔다.
“다행이다.”
진통은 전날 밤부터 시작됐다. 아내는 새벽 내내 사투를 벌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옆에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진통이 심하면 무통 주사를 놔달라고 사정했다. 아내가 내 머리채라도 잡으면 좋았겠다.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산고에 내 머리채 잡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분만실에서 나와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이 진통 중인 아내에게 물어봤다.
"남편은 나가는 게 좋을까요?"
아내는 그러라고 했다. 당시에는 무척 서운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아내는 진통 중 일을 거의 기억 못 했다. 기억을 지워 버릴 정도로 그 고통이 어마어마했었다. 나는 감히 상상되지 않았다. 생과 사를 오가는 괴로움이었다. 내가 어디 있느냐는 철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몇 시간 뒤 간호사 선생님이 급하게 불렀다.
“이제 곧 아이가 나와요. 아버님 들어오세요.”
피 마른 대기가 끝났다. 나는 허겁지겁 분만실로 달려갔다. 그 안 분위기는 아까와 달랐다.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한 변화였다. 다들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그 흐름에 적응해야 했다. 빨리 그 경주에 올라타야 했다. 안 그러면 난 훼방꾼에 불과했다.
잠시 후 아내의 위대한 아픔은 막이 내렸다. 10개월의 여정은 그날로 완성이 됐다. 새로운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됐다.
의사 선생님께서 익숙하게 출산 후 의식을 하셨다. 내게 탯줄 자르기, 아이와 사진 찍기, 영상 편지 남기기를 시키셨다.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추억을 남기게 해 주셨다. 난 하나하나 하며 조금씩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니 아이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첫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들었다. 갓 태어난 아이 얼굴을 먼저 봤다. 그다음은 입을 봤다. 마음을 쓸어내리며 또 짧은 한마디가 나왔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