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그해 가을쯤이었다. 아내가 육아 휴직 제안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가볍게 운을 띄우고 갔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공명을 일으킨 걸까? 없던 생각이 아지랑이같이 피어올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걸까?’
진부하다. 근원적인 질문이다.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항상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자부해 왔다. 천천히 돌아봤다. 생각할수록 ‘가족’이 아닌 ‘내’가 있었다. 돈, 커리어, 자리, 인정, 자부심이었다. 나한테만 좋았다. 내가 불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욕심이 없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욕망의 화신이었다.
직장 다니다 보면 힘든 일이 많다. 과도한 업무, 인간관계, 불합리한 처우, 비합리적인 상황, 사라지는 사람사이의 도리, 나만 잘되면 남은 상관없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한도 끝도 없다. 힘들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들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부정적인 감정은 내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게도 손을 뻗쳤다. 감추려고 해도 안 됐다. 내 기분에 따른 집공기 변화를 막을 수 없었다. 그 탁해진 공기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들을 아프게 했다. 간접흡연 같았다. 멈춤이 필요했다. 쉬어야 했다. 며칠 일시적인 휴식이 아니었다.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했다. 완전한 휴식이 필요했다.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해야 했다. 충만해진 에너지를 가족에게 써야 했다. 아이에게 우선이었다.
애써 외면했다. 천천히 곱씹어 보니 깨달았다. 나 자신만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뛰는 건 좋은데 가족에게 피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고집부릴 게 아니었다. 이제 육아 휴직 해야 되는 이유를 찾아봐야 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섰다. 여러 갈래 생각을 쭉 나열해 본다. 우선순위대로 정렬해 본다. 그중 첫 번째를 선택한다.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나만의 최선의 방법이다.
내 육아 휴직 단어를 나열했다. 대출 이자, 생활비, 회사 자리, 안정적인 업무, 주변 시선. 어느 것도 아이보다 우선인 것은 없었다.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됐다.
금적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감사하게 육아 휴직 급여도 받을 수 있었다. 계산해 봤다. 내가 돈 안 쓰면 1년 버틸 수 있었다. 전보다 궁핍하게 살 것이다. 못 살 거는 아니었다.
아이와의 시간을 늘리는 건 육아 휴직 아니면 힘들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 결정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귀한 시간을 놓칠 것만 같았다.
반대로도 생각했다. 아이가 나와 놀아 주는 마지막 시간이다. 친구들이 더 좋은 시기가 금방 온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늦다. 그전에 내가 먼저 놀아 달라고 해야 된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소중한 것 앞에서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더 고민할 게 없었다. 이제 육아 휴직 막차를 타기 위한 예매를 해야 했다. 우선 아내에게 선언했다. 아내는 환영했다. 우리는 드디어 접점을 만나게 됐다. 내가 아내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 난 INFJ이자 자극추구 2점, 위험회피 100점이다. 아내가 없었으면 절대 결정 못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해 줬다.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때 가봐야지 안다. 웃을 수도 있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적어도 매연을 내뿜는 일은 없을 거다. 아이와 잊을 수 없는 추억 만드는 건 분명하다. 아이가 빛나는 순간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길 수 있다. 나중에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