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 팔지 말고 꾸준히 바라보기
미세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자전거 다시 가르쳐 줘 봐.”
아내는 내게 미션을 줬다. 아이가 자전거를 못 타서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작년에도 준 미션이었다. 그때는 성공을 못했다.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아내 말에 번쩍 기억이 났다. 가면 갈수록 잘 잊어버린다.
작년에 아이에게 자전거가 없어 ‘따릉이’를 빌려 연습했다. 아이들을 위한 ‘새싹 따릉이’를 빌렸다. 이 작은 따릉이도 우리 아이에겐 큰 따릉이였다. 그때는 아직 몸이 작았다. 처음 타보는데 자전거까지 몸에 안 맞으니 연습이 힘들었다. 피지컬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아이는 아쉬워했다. 몸이 더 크고 다시 하기로 훗날을 기약했다. 그 훗날이 지금 왔다. 아내는 나보다 기억력이 좋다. 아내 덕분에 아이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이번에도 ‘새싹 따릉이’를 빌려 연습했다. 아이가 그동안 키가 많이 컸다. 이제 작은 따릉이를 올라탈 정도가 됐다. 우리가 특별히 잘 먹인 건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놀라웠다. 기특하기도 했다.
연습 장소는 동네 공원이었다. 시간은 밤에 하기로 했다. 공원에는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밤에는 시원했다. 사람이 없어서 자전거 연습하기에도 딱 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자전거 타기 위해서는 상체와 하체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상체는 핸들을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하체는 페달을 계속 돌려 앞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자전거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내가 자전거 배웠을 때를 떠올렸다. 경사가 있는 공터에서 연습했다. 뒤에서 자전거를 아무리 잡아 줬지만 나는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운동 신경이 없었다. 잘 안되니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넘어지겠다는 생각으로 혼자 막무가내로 타기 시작했다. 경사가 있어 내가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자전거는 앞으로 나갔다. 하체가 할 일을 경사가 대신해 줬다. 상체만 신경 쓰면 됐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또 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어려운 걸 먼저 했으니 나머지 페달 돌리는 건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이에게도 동일한 방법을 알려줬다. 마침 공원에는 경사로가 있었다. 아이는 경사를 내려오며 중심을 잡아 봤다. 아이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는 수십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다. 매일 한 시간 넘게 연습했다. 며칠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탔다. 끈기 있게 끝까지 집중했다. 그럼에도 잘 되지 않았다. 아이는 답답해했다. 나는 안쓰러웠다.
아이가 내려가면 자전거를 다시 꼭대기로 올리는 건 내 몫이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지쳐갔다. 그러면 안 되지만 안 되는 이유를 아이에게 찾으려고 했다. 아이가 나보다 더 운동 신경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그 운동 신경도 결국 내가 물려준 거다. 몸이 힘드니 괜한 생각까지 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음을 곧 알게 됐다.
경사로에서 타는 것이 안되니 방법을 바꿨다. 평평한 땅으로 옮겼다. 내가 자전거 뒤에서 잡아줘 봤다. 아이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이 방법도 아니었다.
자전거가 우선 앞으로 나가야 될 거 같았다. 내가 어느 정도 뒤에서 잡아 주다 자전거를 밀어봤다. 그 이후에 아이에게 중심을 잡아 보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시도한 방법이었다. 의외로 아이에게 적중했다. 신기하게도 금방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최고인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내 방법은 여러 성공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한테 맞는 방법이었다. 각자 자신한테 맞는 방법이 있었다. 나에게는 경사로 방법이 맞았다. 아이에게는 뒤에서 밀어주는 방법이 맞았다. 어떤 방법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자전거 탈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아이가 며칠 사이에 일취월장했다. 중심을 잡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페달도 잘 돌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탔다. 한 단계 한 단계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입에서 연신 잘했다 잘했다가 나왔다. 나도 좋은데 아이는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이는 자전거 타기를 마스터하니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한강에 자전거 타고 가서 컵라면 먹는 것이었다. 아이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나에게는 소박해 보였다. 아이에게는 전부였다. 결국 그 소원은 금방 풀었다. 자전거 타서 좋은 건지 라면을 먹어서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자전거를 잘 타니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스스로 뿌듯해하는 게 보였다. 자꾸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자전거 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 모습만 봐도 흐뭇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잘 탄다고 말했다.
앞으로 아이에게 내 방법을 강요하지 말아야겠다. 내 역할은 아이가 맞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다. 찾을 때까지 옆에서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도와주기도 하고 혼자 하게 나 두어야 한다. 한눈팔지 말고 꾸준히 바라봐야 한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와 서로 토론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그게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나머지는 아이가 알아서 잘해나갈 것이다. 왠지 유명한 축구 감독이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