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들 Oct 19. 2023

벌써 6개월

남은 6개월 바쁘게

 육아 휴직이 벌써 6개월 지났다. 회사 시계와 집 시계는 달랐다. 회사에서는 시간이 안 갔다. 집에서는 빠르게 흘러갔다.


 육아 휴직 시작할 때는 뭐든 자신 있었다. 마치 군대 전역 직후와 비슷했다.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아이와 여행 가고 싶었다. 아이와 자주 놀러 다니고 싶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렇게 못해왔다.


 회사 다닐 때 월급이 적당히 들어왔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우리 가족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여행도 가끔 다. 아이와 여기저기 다녔다. ‘어디 갈까?’가 문제였지 ‘얼마지?’가 문제는 아니었다.


휴직하니 달라졌다. 월 수입이 급감했다. 월급은 당연한 아니었다. 매우 감사한 존재였다. 그전처럼 소비할 수 없었다. 여행을 주저하게 됐다. 아이와 놀러 가는 것도 피하게 됐다. 어디 가려면 10번은 생각했다. 결국 안 갔다. 아이와 주로 집에서 놀았다. 집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난감했다.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와 공원으로 갔다. 부족한 아빠였다.


 휴직하면 시간이 여유로울 줄 알았다. 아이가 등교하면 집안일이 눈에 띄었다. 하고 나면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됐다. 점심 먹고 나면 다른 집안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끝내면 금방 아이 하교 시간이 됐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이런저런 것을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그렇게 금방 일주일이 지나갔다. 어느 순간 한 달이 지나갔다. 그 한 달이 여섯 번이 됐다.


 집안일은 지금 안 하면 집이 엉망 될까 걱정됐다. 빨리 해야 속이 시원했다. 눈에 보이고 생각나면 바로 했다. 끝내도 어느덧 또 해야 됐다. 해도 잘 티가 안 났다. 생색 좀 내야 알아줬다. 급한데 덜 중요했다.


 직장에서도 이런 급한 일을 많이 했다. 열심히 했었다.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기도 했었다. 끝나면 내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몸과 마음만 축났다. 허무했었다. 억울했었다.


 그럼에도 급한 일은 중독성이 있었다. 결과가 빨랐다. 그 속도에 쾌감을 느꼈다. 일이 없을 때도 일부러 찾아서 하기도 했었다. 한가로운 불안을 못 견뎠다. 일을 하고 나면 잠시 마음이 편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초조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중요한데 덜 급한 일은 그 반대였다. 결과가 바로 안 나왔다. 시간이 오래 걸려 지루했다. 인내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익숙해지려면 반복 숙달이 필요했다. 이 과정이 힘들어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손에 쥐는 게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내 것이었다. 내 손에 오랫동안 있었다. 중요한 일은 질적으로 급한 일과 달랐다.


 휴직하면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싶었다. 여전히 옛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집안 일로 하루를 채우면 보람 있다고 자기 위안했다. 합리화로 중요한 일은 애써 외면했다. 피하기만 하면 안 됐다. 아무것도 안 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바로 중요한 일부터 해야 했다.


 금전에 얽매이지 말아야겠다. 꼭 돈을 들여야 하는 건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거다. 지금처럼 해야겠다. 책을 본다. 보드 게임 하고 퍼즐도 맞춘다. 그림도 그린다. 노래 듣고 춤도 춰본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춤은 영 늘지 않는다. 난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내가 있어야 될 자리에 늘 있으면 될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관심 있게 지켜보면 될 것이다. 아이가 평안할 것이다.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학교에서  쓸 에너지를 집에서 충전해 갈 것이다.


 급한 일 중독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중요한 일이 우선이다. 급한 일은 뒤로 미루자.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가 우선이다. 온몸으로 하는 아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매 순간 어떤 마음인지 같이 느껴야 한다. 내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한다. 주고받아야지 재밌다.


 소소한 매일에 만족해야 한다. 가벼운 하루가 모여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어느 순간 묵직해질 것이다. 6개월이 다시 지나면 우리 기억 공간에 추억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회상은 우리만의 보석 상자가 될 것이다. 둘만 아는 숨겨진 암호로만 열릴 것이다. 견고하여 아무나 열 수 없을 것이다. 상자에 많이 채워야 한다. 앞으로 할 내 중요한 일이다. 할 일이 많다. 남은 6개월 바쁘게 보내자.

이전 09화 돌아 봐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