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뱅크와 구대성

by 야원


'부장뱅크'란 말이 있다. KBS 뮤직뱅크에 부장을 붙인 건데, 2017년 KBS 제작진 총파업 사태로 당시 아이돌 무대 연출과 촬영, 편집, 송출을 부장급이 직접 하며 시작된 거라고 한다.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포인트 안무를 정확히 짚고, 현란하지만 정신없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세련되게 촬영한단 감탄이 이어졌다. 아직까지도 '전설의 부장뱅크 무대' 란 제목의 영상들이 인기다. KBS 가요톱10 유튜브 채널은 아예 '부장뱅크 모음' 영상까지 내놨다.


아이돌 잘 모르는 내 눈에도 무대가 좋은 건 알겠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공감 간다. 한동안 실무에선 멀어져 있었을 부장들이 오래간만에 돌아와 '무대란 이런 거다' 보여주는 서사.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튜브 검색창에 '부장'만 쳐도 뱅크가 따라오는 이유다.


부장뱅크 무대 중 가장 유명한 태민-MOVE. 출처=유튜브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아이돌보단 야구인 나는 최근 부장뱅크를 다시 보면서 야구 레전드 구대성 해설위원이 떠올랐다.


최고의 좌완투수, 20세기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한화의 MVP,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을 안긴 일본전 완투승, 2006년 1회 WBC 4강의 주역인 '대성불패' 그 구대성 선수다.


때는 2023년 1월 19일. 호주 리그에 참가 중인 질롱 코리아 팀에 합류한 구 위원이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와의 10라운드 경기 8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해설과 캐스터의 나지막한 멘트가 이어졌다.


"1969년생, 쉰세 살의 나이의 투수가 마운드를 올라왔습니다. 지금이 2023년도죠? 90년대 중반에 활동했던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1993년에 데뷔한 투수가 데뷔 후 30년이 지나 오른 마운드.


첫 타자를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잡더니, 두 번째 타자도 범타 처리, 세 번째 타자까지 삼진을 잡았다. 1이닝 2K. 당시 구대성 위원은 총 3경기에 등판해 2.1이닝을 평균자책점 0으로 마무리했다.


50대 '부장급' 레전드의 완벽한 무대다.


구 위원은 이후 인터뷰에서 깜짝 등판은 호주 리그 측의 요청이었다고 말했다. 야구 흥행을 위한 요소였단 거다. 그러면서 시속 130km 정도는 계속 던질 수 있게 몸을 만들어왔다고 했다. 2005년엔 당시 36살로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 데뷔하기도 했던 구 위원에겐 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닌 듯하다.


구 위원의 인터뷰 중에선 아직 맴도는 대답이 하나 있다. 현역 시절 혹사를 당했다는 논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자신은 한 번도 혹사당한 적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항상 스스로 공을 던져왔고 많은 경기에 출전한 덕분에 팬들이 자기 이름을 기억해 주는 거라는 답이었다.


어떤 분야든 존경받는 부장들은 다 이유가 있다.


1이닝 2K 무실점 후 마운드를 내려오는 쉰세 살의 구대성 투수. 출처=유튜브 'MBC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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