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검게 보인다 하여 흑해인 줄 알았더니

4월에 찾은 트라브존(Trabzon)

by Neonsky

## 바닷물이 검게 보인다 하여 흑해인 줄 알았더니

처음 만난 흑해는 이름 그대로 어두웠다.

야간 버스는 삼순과 기레순을 거쳐 밤새 트라브존으로 향했다. 대략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거리를 왼편에는 흑해를, 오른편에는 연안 도시들을 낀 채 달려온 것이다. 중간중간 거점에 들러 승객들을 내려주거나 휴식을 취하며 꼬박 8시간 동안을 이동했다.


비는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야간 버스 안에서 달빛이 고요히 가라앉은 흑해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구름이 잔뜩 껴 육지와 바다를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새벽이 지나 동이 트면서, 겨우 흑해가 묵빛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 만난 바다는 이름 그대로 어두웠다. 안 그래도 시커멓기로 유명한데, 비까지 내려 더욱 탁한 기색을 띤다.


트라브존까지 가는 긴긴 버스 이동인데도 우등버스가 없어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불행히도 옆자리엔 거구의 터키인 사내가 앉았고, 차가 흔들릴 때마다 부딪히는 어깨를 무시한 채 잠이 들기엔 난 그렇게 무신경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밤새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다 흑해 바다의 유래에 대해 이리저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보즈테페에서 바라본 트라브존 전경

바닷물이 검은색으로 보여 흑해라고 불리는 줄 알았지만 흑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 오스만 제국이 주둔한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에 단순히 북쪽을 상징하는 카라 데니즈Kara deniz라는 이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흑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전통적인 튀르크 민족의 관점에서는 북쪽은 검은색을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흰색이 남쪽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에 지중해를 백해Ak deniz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태양빛을 받으면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지중해를 보고 백해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 또한 그럴싸하다.)


물론 이밖에도 햇빛을 흡수하는 박테리아가 유난히 많아서 빛의 투과율이 떨어져 바다가 어둡게 보인다거나, 비가 자주 오고 수심이 깊어 파도가 심한 데다 얕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기 때문에 검은 바다라고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설들을 가져다 붙여도 그럴듯해 보인다.


새벽에 깨서 흑해 바다를 바라보는 심정으로는 분명 단순히 거무튀튀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트라브존의 사진들을 검색해보니 분명 맑고 투명한 바다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주는 것 같지만 아무렴 내가 겪은 경험이 전부인 속 좁은 여행자에겐 그저 '검은색'바다였을 뿐이었다.



## 이른 봄에 찾은 트라브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여름 휴가철을 맞아 터키를 찾는다. 실제로 5월부터 성수기가 시작되는 만큼 4월의 터키는 비교적 한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터키의 도시가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는 것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유명한 함시마저도 겨울이 제철이라 지금은 먹을 수도 없단다. 억지로 구해 먹으면 먹을 수 있겠지만 신선하지도 않고 맛도 없다. 또 겨울부터 초봄까지는 눈비가 잦아 수멜라 수도원 투어라든지, 우중괼 투어가 자주 취소된다. 대부분 높은 산지에 자리 잡은 관광지라서 금세 고립되거나 눈 때문에 빙판길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박물관 이스탄불, 세상에 다시없을 기암괴석과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새하얀 석회산의 파묵칼레. 이런 유명 관광지에는 특유의 떠들썩함과 여흥이 있다.


하지만 4월의 트라브존 여행은, 함시를 먹으러 떠난 식도락 여행이라 칭하기에도 부적합할뿐더러 보수중인 수멜라 수도원의 개장일도 한 달 이상 남아 역사 탐방 여행이라 칭하기에도 애매했다.


아니나 다를까. 해안도로를 낀 채 트라브존 시내로 접어들었지만 실망감만 가득이었다. 식당가가 즐비하고 너른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바닷가를 기대했지만 트라브존의 바다는 관광지보다는 산업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편의 시설보다는 항만이, 요트보다는 수많은 어선들이 만선의 기대를 앉고 출항 준비에 한창이었다. 조금만 시선을 멀리하니 커다란 부두에 물건을 싣는 크레인이 보였다. 바다를 머금은 풍요의 도시보다는 꼭 군산의 새만금 산업단지와 같은 황량함이 나를 맞아줬다.


대체로 트라브존은 강수량 자체도 많고 겨울에는 온화하며 여름에는 서늘한 기후를 보인단다. 대신 비가 잦고 흐린 날이 많아 여름이 전의 트라브존에서는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 이른 봄에 찾은 트라브존은 비릿함을 머금은 바람이 연일 불어오고 날이 흐려 온 동네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것만 같았다.


트라브존 관광의 중심지 메이단 공원.

택시를 타고 메이단 공원에 내렸다. 버젓이 미터키에 20리라가 찍혀있지만 30리라를 부른다. 괜히 아침부터 운전기사와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30리라를 건넸다. 비 온 뒤의 쓸쓸함과 난개발에 가까울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에 괜히 위압감을 느꼈다. 시작부터 바가지라니. 예감이 좋지 않다.


도심 거리는 메이단 공원을 중심으로 뻗어있다. 광장 뒤쪽으로는 돌무쉬 승강장이 있어 도시의 곳곳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번화가로 이스탄불의 이스티크랄 거리와 비슷한 우준 거리를 따라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연일 인파들로 북적거리고 맥도널드, 버거킹 등의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이른 시간이지만 광장에는 벌써부터 활기가 맴돈다. 추운 날씨에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차이를 마시는 트라브존 사람들과 돌무쉬나 투어버스를 탑승하는 관광객들이 여럿 보였다.


성수기 비성수기를 떠나 트라브존은 규모 면에서나 역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고대 그리스 시절의 유적부터 아타튀르크 정원 같은 현대적 관광지가 있을뿐더러 특히 근교에 있는 쉬멜라 수도원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느낀 을씨년스러움과는 별개로 도시의 유적들과 근교의 관광지만으로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숙박 어플로 예약한 최저가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돌무쉬에서 하차하는 터키인 할아버지
'돌무쉬(Dolmus)'는 터키어로 '찼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한산해도 미니버스에 승객들이 가득 차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는다. 정해진 노선이 있지만 정류장이 따로 없어 손을 흔들거나 소리를 질러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언제나 만원에 가깝기 때문에 운전석 부근에 가까운 사람이 돈을 건네받아 요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무쉬를 탈 때에는 앞에 적힌 팻말을 보고 기사님에게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잘못된 곳으로 가는 낭패를 막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여행 후반부에 운전사는 물론 승객들에게 내 목적지를 주지 시키고 종이로 적어서 목적지를 보여줬다. 가득 들어찬 승객들 때문에 원하는 목적지에 내리지 못한 일을 두어 번 겪은 뒤였다.

정해진 노선 내에 원하는 곳에 하차할 수 있어서 언뜻 편해 보이지만 돌무쉬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었다. 아무리 일찍 돌무쉬에 탑승해도 승객이 가득 차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아 제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었고 또 일일이 구글맵을 확인하지 않으면 목적지를 지나치기 일수였다. 일찍 돌무쉬에 타봤자 30분 이상을 정차해있는 경우가 잦아 속에서 열불이 난다.(물론 내 성격이 급한 것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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