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호수 마을 우준괼, 터키의 알프스는 그만좀!

by Neonsky
muhammad-usama-fTrR9pqsiAw-unsplash.jpg Photo by Muhammad Usama on Unsplash

#짭퉁 모자 사들고 우준괼로


트라브존 근교에 위치한 작은 산골 마을에 다녀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하나씩은 있는 알프스가 이곳 터키 트라브존에도 있단다. 터키의 알프스. 이미 웅장한 돌산 가운데 자리 잡은 아마시아에서 스위스 알프스보다 더욱 큰 감동은 받고 온 뒤였다. 어디든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번 흑해 여행의 목적인 수멜라 수도원 투어를 놓친 후 차선책으로 선택한 여행인데, 얼마나 좋으려나. 출발 전부터 눈비를 오가는 이곳 날씨처럼 심술을 가득 부려본다. 여행 며칠이나 했다고 여행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질 못한다.


인터넷을 뒤지고, 구글맵을 보며 도시를 헤맨 뒤,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어 도착한 우준괼 행 버스 정류장. 2시간이 소요되는데, 당장 출발하는 버스는 오전 11시란다. 지금 시각 10시. 한 시간을 기다리기 아쉬워 차선책을 알아보지만 이내 체념한 뒤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택시나 투어사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면 이곳 정류장에서 직접 표를 구매해야 한다. 꽤나 으슥한 곳에 위치해있다.

내가 여자였다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골목들을 돌아다녀본다. 그런데 먼지가 잔뜩 쌓인 가판대에서 쇼핑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을 깎으려 흥정하는 게 퍽이나 재밌다. 마음에 드는 모자가 있어 흥정을 시도해봤지만 폴로라는 이유만으로 실패.

아니 사장님도 나도 짭퉁인걸 아는데 너무나 당당한 그 모습에 뭐라 깎을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터키에 폴로 공장이 있다는데.. 정품이라 치지 뭐. 같은 나라에서 만들었으니 같은 메이드 인 터키잖아 하며 긍정 회로 가동, 결국 한 푼도 깎지 못하고 제 가격에 구매한다.(훗날 이 폴로 모자는 여행 내내 제 값을 톡톡히 하긴 했다.)



## 고요한 호수의 마을 우준괼


25인승 미니밴을 타니 옆자리에 터키 여학생이 앉는다. 터키는 아직도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데, 지역마다 다르고 세대마다 다른가보다. 간간히 흘깃대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둔다.


버스는 내내 작은 냇물을 낀 채 산길을 오른다. 하류는 흙빛으로 탁했지만 이내 옥빛으로 변한다. 점점 식생이 달라지고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끊긴다. 아니, 대체 얼마나 높이 올라가길래.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한 시골마을이란다. 물론 해발이니까 체감상으론 낮을지는 몰라도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한 높이에 호수마을이 있다는 소리다.

수많은 질문들에 다소 지쳤지만, 여행내내 이 소란스러움이 그리웠다.


한라산만 하더라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다른 식생들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이곳이라고 다를까. 아 이래서 7,8월이 방문 적기구나. 시시각각 변하는 식생과 비에서 눈으로 바뀌는 날씨 탓인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긴 버스 이동이 지루해져 옆자리로 시선을 슬쩍 옮기다 터키 소녀와 딱 눈이 마주쳤다.


케이팝의 영향 때문에 한국인을 단박에 구별해낸 건지, 아니면 터키인들로 가득한 버스에 동양인 홀로 우준괼로 향하는 게 신기한 건지, 말을 걸고 싶은 눈치인데 주저주저한다. 아니, 난 이런 관심받아본 적이 없다고.. 그대로 무시하긴 머쓱해 겸연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내 미소에 화답하듯 슬며시 말을 건넸다. 아! 시작됐구나. 이때부터 쏟아지는 질문공세. 어느 나라 사람이야? 왜 여기까지 왔어? 여기 어때?


여행 초반에는 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 지역의 사정도 듣는 여행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양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원래 질문이 많은 건지, 특유의 폴리크로닉한 문화권의 특색인 건지 일단 물고를 트면 ‘용건만 간단히’라는 용어는 그들에게 소용이 없다.


잠깐 사이에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로 금세 방전이 된다. 내가 아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기엔 그들의 영어가 짧았고, 영어를 터키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의사소통 방식이 최선이었다.(한국어로 번역하기엔 번역기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오랜만의 소란스러움이 반갑기도 했으나, 이내 곳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졌다. 호수 입구에서 작별을 고한 뒤, 홀로 호숫가를 거닐기 시작했다.


모스크와 호수의 조화가 이곳을 결정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게 아닐까


그곳은 산골마을이라는 명칭에 적합한 곳이었다. 산기슭을 따라 소박하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꾸민 집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에는 푸른 들판을 점점이 물들인 가축들이 한가롭게 거닐었다. 비가 그쳤지만, 포장이 도지 않은 시골길은 온통 진흙창이었다. 여기저기 물웅덩이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사람들, 진흙이 묻는 말든 태연히 제 갈길을 가는 동네 개들이 한 폭의 시골 풍경을 완성했다.


호수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한편에는 이슬람 사원이 우뚝 솟아 있었고,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푸른빛 호수가 드넓게 펼쳐 저 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침엽수림 사이에 누군가 커다란 됫박을 들어 물을 채워 넣은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다소간 눈 비가 섞여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몇 일으켰다.

눈비로 토사가 쏟아진 곳도 다수, 경사도 가파르다.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등반을 보상받는다.

호수를 낀 채 산책을 하다 보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잦은 눈비 탓인지, 부실공사 탓인지 곳곳에 토사가 무너지거나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여러 관광객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올라갔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가파른 경사가 주는 체력적 허덕임,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 등을 무시한 채 그냥 올랐다. 관광지의 소란스러움 탓일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이 짧은 등반만으로 금세 기분 전환이 된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사뭇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두꺼운 옷 사이로 맺힌 땀방울을 식혔다.


전망대에 오르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속세의 번잡함에서 벗어난듯한 착각에 빠졌다. 뒤를 재촉하는 관광객들, 아랑곳 않고 차를 몰아 대는 운전자, 풍경보다는 진흙 투성이가 된 신발에 시선을 두는 자신에게서 벗어난듯한 착각에 말이다. 침엽수가 대부분인 양쪽 산의 나뭇가지엔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푸른빛을 잃지 않았다. 석회질 호수의 푸른빛과는 적절한 대조를 이뤄 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었다.

호수의 초입보다는 다소 초라한 안쪽.

전망대에서 내려와 조금 더 발품을 팔면 썩 괜찮은 식당들이 나온다. 물론 호수 초입에 모스크와 어우러지는 풍경, 그리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은 못하다. 그래도 송어가 유명하다니 그럭저럭 창밖에 담기는 풍경을 조미료 삼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다만 한국만큼의 인테리어 소양은 없는 건지 예전 한국 저수지에 종종 볼 수 있는 통나무 카페 같다. 한국의 예쁜 교외 카페나 식당을 기대하진 말자. 생긴 지 오래되지는 않았는지 고졸한 맛은 없다. 적당히 전망이 제일 좋은 식당을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 덧붙이는 말


한국의 몽마르뜨, 한국의 알프스 등등. 꼭 다른 장소에 빗대어 관광지를 홍보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 몽마르뜨, 알프스에 가본다면 이런 홍보 방식이 정말 별로라는 걸 안다.


관광지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기 마련인데 고작 조금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게 우습다. 오히려 여행을 다니면서도 특정 장소를 빗대 설명하는 곳은 꺼리게 된다. 단 한 번도 몽마르뜨 만큼, 알프스만큼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적이 없다.


얼핏 문화사대주의적인 발언 같지만 한국의 ooo이라 홍보하는 것 차제가 더욱 별로다. 물론 관관객들을 현혹하기엔 좋은 수단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워 다시는 방문할 필요가 없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고유의 특색을 강조한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


분명 우준괼만의 특색이 가득한데, 막연히 스위스에 대한 동경으로 ‘터키의 알프스’라는 별명을 남발하는 것 자체가 문화사대주의적인 표현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제발 적절한 비유를 해야지. 이런 수준 낮은 비유 때문에 관광객의 실망감만 부추기지 않기를.


한때는 터키의 것이 유럽의 것들을 주도했다. 지금은 오스만 제국이 쇠락해 오히려 유럽적인 면이 터키의 많은 것들을 대체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변하진 않았다. 현재도 터키의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 있으며 과거의 자아와 새로운 자아가 뒤섞인 모자이크와도 같다.


다만 종교적인 색채 때문에 역사적 문화유산을 훼손하거나, 사대주의적 태도로 터키의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소박한 바람에 이런 글을 남긴다.

우준괼을 여행하는 내내 알프스가 연상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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