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시아 전경을 즐기는 두가지 방법

당신이 아마시아에 간다면 한 번쯤은 참고해도 좋을 법한 이야기

by Neonsky

##혼자 하는 여행

쓸쓸함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혼자 하는 여행은 썩 나쁘지 않다. 꼭 때에 맞춰 관광을 하거나 식사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내키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일정을 스킵할 수도 샌드위치 등으로 식사를 때울 수도 있다. 가끔 한국말이 그립거나 이런저런 곳에서 당한 억울함을 토로할 사람이 없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멀리 가기 귀찮음 병’으로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가기 꺼린다거나 교통편이 복잡한 곳은 일정에서 생략해버리는, 아주 고약한 병이다. 혼자 관광지까지 가는 길이 지난할뿐더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허무함 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까운 곳만 가려 든다.

아마시아 성채는 첫 번째 발병 지였다. 걸어서 50분, 택시를 잡아타면 30리라 정도. 내려오는 길에는 택시가 있을지 없을지 모름. 기분 나쁘게 내리는 겨울비. 오전 나절 비를 맞고 돌아다녀서 떨어져 으슬으슬 떨리는 몸.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 방문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만약 그곳에 간다면 기분마저 비에 젖어 눅눅해질 것만 같았다.


다음 일정을 검색하려 핸드폰을 꺼내보니 잔뜩 물기를 머금어 터치가 되질 않았다. 원래는 생활방수 정도는 됐지만 30조각이 넘게 깨진 액정에 방수 기능을 기대하긴 무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돈을 주더라도 액정을 수리할 걸. 소화하지 못한 일정이 있었지만 액정을 말리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중간중간 꼭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가이드북의 조언은 정확했다. 체력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휴식을 취하지 않는 무리한 여행은 여행을 망치기 쉽다. 짜증과 피로감이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딱 내가 그랬다. 밤새 잠들지 못한 상태에서 오전에만 3군데의 관광지를 돌았다. 휴식이 필요한 참이었다.


여행의 매력은 불완전성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니 내가 말했나? 너무 틀에 박힌, 가이드북 코스대로 움직이는 여행은 매력이 없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조했건만 내가 그런 여행을 답습하고 있었다.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려면 방구석에서 유튜브나 보는 게 낫지. 비싼 돈 들여 터키까지 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문화유산이 많고 남한의 8배에 달하는 면적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으리라. 빡빡하게 계획한 오후 일정을 포기하고 아마시아 성채 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카페를 나와 성으로 향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아마시아 전경을 즐기기

높은 곳에서 아마시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두 가지 장소가 있다. 아마시아의 북쪽을 감싸고 있는 하르쉐나 산Harşene Dağı의 꼭대기에 위치 오랫동안 도시를 지켜온 아마시아 캐슬(Amasya Kalesi),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블로그를 통해 소개된 야경 맛집 알리 카야(Ali kaya) 레스토랑.


각각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터키의 알프스라 불리는 아마시아의 전체 경관을 감상하기엔 성채가, 예실으르막을 따라 설치된 조명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하기엔 알리 카야가 적합하다.



아마시아 성채(Amasya Kalesi)

성채로 오르는 길은 수월하지 않다. 자가용이 있을 턱이 없는 관광객들은 대개 택시를 이용하거나 40분 정도를 걸어 성채에 오를 수 있다. 택시요금은 대략 30리라 정도. 다만 내려오는 택시가 적어 따로 연락처를 통해 택시를 부르거나 걸어 내려와야 한다.


썩 기대되는 길은 아니었지만 좀 전의 다짐도 있었고, 벌써부터 퍼지기엔 남은 일정이 너무 많았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예실으르막을 따라 반대로 걸어 올라갔다.


비록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듯 싶었지만, 멀리 성채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안개와 눈이 내려앉은 성채를 찬찬히 살펴봤다. 우아한 중세의 성은 아니었다. 주로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회암을 깎아 벽돌을 쌓은 성으로 여기저기 무너저 내린 흔적,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폰투스,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 등 이 지역의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성채는 잦은 공격으로 부서졌고, 매번 그 중요성 때문에 재보수가 되었다. 단순히 하나의 성이 산 위에 우뚝 솟은 게 아니라 산 능선을 따라 멀리 성벽이 이어져있고 그 길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었다.

도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서 성채로 들어오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눈으로 드문드문 덮인 회색빛 성, 수도 없이 핀 노란 계란꽃과 초록빛으로 성 안쪽을 물들인 들풀, 주변을 가득 채운 안개. 마치 서로 다른 풍경을 이어 붙인 듯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시내를 둘러싼 낮은 돌산을 배경으로 새워진 성벽의 모습을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무성하게 자란 들풀과 버려진 벤치, 난간이 없어 위태롭게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위적으로 절대 갈음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전통가옥과 통일감을 주는 주황색 지붕들, 현대와 과거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구시가지의 모습들을 눈에 담았다. 천년의 세월이 아마시아 성채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알리 카야(Ali Kaya) 레스토랑

여행을 가면 매번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현지 음식을 먹을 것 같지만, 시간이 촉박하고 피곤하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허기를 달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경우에는 나만의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얼마나 분위기 있나’와는 별도로 나름의 공간적인 취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하고 활기 넘치는 공간에 있어야 힘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개된 장소보다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 물론 나는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 때문에 아무리 맛이 뛰어나고 특색 있는 음식점이라 할지라도 시끌벅적하고 테이블의 간격이 좁아 서로 간의 간섭이 잦은 식당은 잘 가지 않는다.


다행히, 아마시아에는 조용히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이 있었다. 바로 알리 카야가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 예실으르막을 비추는 노란 나트륨 등과, 하르쉐나 산에 지어진 석굴 분묘와 성채를 비추는 조명들을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음식 맛도 썩 나쁘지 않아 연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자칫 시끄러울 것도 같지만 다들 야경을 감상하느라 대화보다는 창문 너머로 시선을 두기 바쁜 것 같았다. 식당에 도착하니 야경을 감상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적당히 조용한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이 식당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덕을 오르며 여러 연회장과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이곳만큼 석굴 분묘와 예실으르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서서히 비가 그치며 사위가 밝아졌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각나 도시를 가르며 내렸다. 화려한 야경이나 근사한 식사보다도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야경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관광지를 벗어나 실생활에 녹아드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유명 도시에서는 여행객을 위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지 사람들의 실제 문화에서 한발 비껴서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관광 도시들이 관광객은 관광객으로 대하는 친절함을 보인다면 이곳 아마시아에서는 전혀 달랐다. 예실으르막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 구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일상, 묵묵히 도시를 살아가는 터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였다. 그 안에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삶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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