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장소를 찾아서, 수멜라 수도원

by Neonsky

단순히 사진 한 장 만으로 큰 의미가 담기는 장소가 있다. 관광지의 역사적 가치나, 관광거리, 소요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말이다. 실제로 가보면 보잘것없는 데도,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홀린 듯 끊임없이 찾아간다. 수멜라 수도원이 그랬다. 방문하는 시점에는 보수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고, 먼 길을 돌아 겨우 외관만을 훑고 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깎아지는 절벽과 울창한 침엽수를 배경으로 위태롭게 서있는 수도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사진 속의 장소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잘 찍힌 사진의 위력은 대단하다.



수도원에 찾아가는 길

수멜라 수도원에 가기 위해서는 투어사를 이용하거나 매일 아침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탑승하면 된다. 하지만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았을뿐더러 수도원 공사로 인해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당장은 투어 업체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사실 요금도 그리 차이 나질 않았고.


전날 호스텔에서 예약한 투어를 이용하기 위해 일찍 리셉션에 내려왔다.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수멜라까지 가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식당에 물건을 맡아 주겠단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돌무쉬를 타거나 장거리 이동버스를 타며 ‘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여행하는 얼치기 여행자는 누구야?’ 하는 시선을 줄곧 받아온 터였다. 짐이 항상 많을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런 작은 호의가 무척 반갑다.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트라브존에서 40km 정도.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 야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소요되긴 해도 결코 먼 곳은 아니다. 흔들리는 투어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울창한 침엽수림과 흑해 특유의 촉촉한 공기가 맞아줬다. 물론 수도원이 목적지라지만 배경이 주는 멋진 경관에 눈을 뻇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경치를 두고 수도원을 지었으니 그런 멋진 사진이 찍혔으리라.

수도원 내부의 프레스코 Photo by fatih-ozdemir--unsplash

수멜라 수도원의 시작은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잔틴 양식과 터키 양식의 영향을 두루 받은 수도원은 두 명의 아테네인 수도승에 의해 지어졌다. 수도원이 지어졌던 당시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다스리던 시기였는데, 때문에 비잔틴 양식의 색채가 짙다. 그 이후로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훼손과 복원이 반복되며 명맥을 유지해왔고, 13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양식이 더해져 지금과 가장 흡사한 모습이 완성됐다.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수도원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아타튀르크가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이곳에 기거하던 그리스인 수도사들이 모두 철수하게 되면서 수멜라 수도원은 방치됐고, 화재와 약탈 등으로 손상을 입어 옛 비잔틴 양식의 화려했던 모습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대로 두기에는 수도원과 웅장한 주변 경관이 아까웠을까. 터키 정부는 수도원을 복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10년도 초반까지는 대중에 공개돼 72개의 방과 비잔틴 양식의 프레스코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아쉽게도 재보수를 위해 문을 걸어 잠근 상태다. SNS나 인터넷을 뒤져봐도 과거에 머무른 사진일 뿐, 최신 내부 사진을 찾아볼 수 없다. 공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낙서로 훼손된 프레스코화가 본래 모습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올해 재개장을 앞둔 수도원이 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오랜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사진 속 장소에 도달했지만, 아직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멀리 수멜라 수도원이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수도원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실제 생김새는 근대의 한 저택처럼 보인다. 과장 좀 보태 미녀와 야수의 배경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침엽수로 둘러싸인 외딴 저택,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고 홀로 사는 야수의 성. 어째 좀 구색이 맞는거 같지 않은가. 하지만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저택 형태의 건물 뒤편으로는 전혀 다른 양식의 건물이 나타난다. 절벽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 형태의 공간은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자연 처마 역할을 했고, 오랜 시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된 것 같았다.

이른 봄에 도착한 수도원은 역시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런대로 수도원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 내려 사진 몇 장을 건져본다. 머릿속의 이미지와 비슷한 구도로 사진 몇 장을 찍고, 이내 실망에 잠긴다. 생각보다 별로라서? 고생해서 왔더니만 구경할 거리가 없어서? 전혀.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수멜라가 그곳에 있었다. 내부엔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수도원으로 뻗어있는 좁고 험한 길을 보니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결국 제 발로 걷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걸까.


장시간의 비행, 몇 번의 야간 버스를 타고 이곳 수멜라 수도원까지 왔지만 아직 닿지 못한 느낌이었다. 가뿐 숨을 쉬며 수멜라에 올라야 이런 절벽에 수도원을 건설하던 사람들이 노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수행하듯 고된 산행을 하며 올랐을 수도사들, 종교적 신념 하나로 험난한 수도원까지 발걸음을 했을 순례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꼭 이런 수도원을 여기에 지어야 했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탄의 파로 탁상에서도, 그리스의 메테오라에서도, 한국의 수많은 불교 사찰에서도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을 그 장소로 택한 걸 보면 꼭 박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세속과의 고립이 주는 어떤 종교적 깨달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도로 이런 외진 곳에 수도원을 지었다면 자동차를 타고 너무 쉽게 다다른 내겐 깨달음의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제 발로 닿지 못한 수도원에 미련이 남는다. 5월 18일. 10년에 가까운 보수공사가 끝나고 재개장하는 날짜였다. 똑같은 봄이지만 늦겨울의 끝자락과 초봄의 앞자락에 흑해 여행을 온 내게 다시 한번 자책을 해본다. 역시 초봄의 흑해 여행은 정말 별로다.

On Foot !


기타 등등, 맥 빠지는 투어


이미 투어 끝판왕을 해치웠기 때문일까. 다음에 이어진 여러 코스에선 계속 멕이 풀린다. 때마침 형편없는 식당이 수멜라 수도원의 고요함과 감동을 망친다. 끝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을 거진 내려왔을까, 몇 번이나 지나친 휴게소 중 한 곳에 들러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가이드와는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지 식당에선 자연스럽게 투어 사별로 좌석을 안내해준다.


혼자 먹기도 뻘쭘하고, 창가를 바라보고 싶은 욕심에 조심스레 합석을 권해본다. 레바논에서 관광을 왔다는 가족은, 아들을 제외하곤 전혀 영어를 할 줄 몰라 어색한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이미 여러 투어팀이 왔다 갔는지 테이블은 앞선 사람의 흔적으로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친절한 건지 불친절한 건지, 대답은 시큰둥하면서 행동은 재빠른 직원이 와서 테이블을 닦아준다. 걸레 썩은 냄새가 난다. 행주가 지나가고 물기가 마른자리엔 썩은 내가 진동해 팔꿈치조차 대기가 싫을 정도다. 테이블에 그냥 포크를 깔아 주려 길래 냉큼 휴지를 깔았다. 겨우겨우 음식을 하나 주문했지만 미리 만들어놓은 음식을 데워서 떠오기만 했는지 영 미지근하고 고기가 질기다. 걸레 빤 물로 음식을 한 것만 같다. 이곳 수멜라에서는 송어가 유명하다는데. 산에서 흐른 차가운 물에서 키운 송어가 아주 별미란다.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수도원을 오른 뒤 송어의 맛을 봤다면 꽤 성공적인 투어로 기억될텐데.


밀가루 전병과 라이스 푸딩. 하나는 밀가루맛, 다른 하나는 차가운 죽에 설탕과 우유를 타서 먹는 맛?
썩 괜찮았던 동굴투어

식사를 마치니 이름모를 전망대에 데려다준다. 발 밑이 훤하게 보이는 유리 전망대란다. 저딴 유리 바닥 관람료가 4리라라니. 아깝다고 생각하고 혼자만 입장하지 않았다. 그러고 일행들을 기다리니 세월아 내월아 뭐가 그리 신기한지 내려오는데만 한세월이다.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서 5리라에 터키 전통 빵을 사 먹었다. 그냥 밀가루 반죽 물을 프라이팬에 구워 참기름을 바른 맛. 가격은 5리라. 목이 말라 환타까지 마시니 9리라를 썼다. 본말전도란 바로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것인가.


이밖에 라이스 푸딩이 유명한 마을에 들러 10리라에 푸딩 먹기, 나름 볼거리가 있었던 동굴 투어 등을 끝으로 트라브존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눈의 왕국, 카르스로 떠나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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