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의 삶을 동경한다.

워홀러의 삶이란 도심을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by Neonsky

워홀러의 삶이란 도심을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이 모이는 도심에 일자리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고 얼마 되지 않는 초기 정착금으로 빨리 일을 구해야 하는 워홀러들은 도심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공원 근처의 집에서 동네 주민들과 아침인사를 나누며 여유 있게 출근하는 삶’은 말 그대로 이상일뿐. 매일매일 생존의 모든 것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호주 생활은 각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탓에 자연스레 교외의 삶을 동경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교외의 삶이 대체 어떻다는 것인지, 간략히 묘사해보면 아래와 같다.

주 5일, 오후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퇴근하고 자동차로 대략 30분에서 1시간을 달려 있는 교외의 주택에 도착한다. 집에는 반려자와 아이들, 개들이 반겨주고 주변 이웃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한다. 주말이면 대량 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쇼핑몰에 나가 원하는 물품들을 사거나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가끔 집 뒷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

실제로 이런 자유와 안락함에 기반을 둔 생활이 요즘 한국인들이 바라는 이상이 아니었던가. 호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유=경제적 풍요의 등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반대로 도심에 사는 워홀러의 삶을 묘사해보자.

주에 6일이 될지 7일이 될지 모르는, 1주일 단위로 정해지는 불규칙한 근무시간. 셰어하우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적 소유가 불가능한 주방, 욕실 등. 간혹 룸메이트와 라이프스타일이 다를 때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하우스메이트들의 눈치를 봐가며 준비하는 식사들. 좀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개방적인 생활. 직장에서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셰어하우스에 도착하지만 이미 잠을 자고 있는 룸메를 깨울까 조심스럽고 언제쯤이고 빨래를 돌릴 수 있는지 눈치싸움의 연속들.

한국에서 꿈꾸던 여유 있는 호주 생활은 이런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높은 기본 시급 탓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어 늘어난 소득만큼 가까운 상점가에서 신나게 쇼핑을 할 수 있다. 여가시간엔 한인들을 만나 차마 속 시원히 하지 못한 말들을 털어놓거나 술을 진탕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게 아니라면 비자 만료 후에 떠날 세계 여행을 꿈꾸며 저축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조금 초라한 듯싶지만 외국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해변에서 물장구도 치고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는다. 그러고선 울월스나 콜스에서 한가득 장을 봐온다.


결국 쇼핑, 수다, 식사 등으로 대표되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전부인 워홀러의 삶이 아닐 수 없다.




도심의 삶이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다양한 인종, 정치 성향이 뒤섞인 복합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폐쇄성 대신 개방성을 낳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적 공간이 거의 없는 상태는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이는 곧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간다.


노동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대변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지낸다는 것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과 여가시간을 혼자만의 활동으로 보내는 사람,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을 오히려 '폐쇄적'으로 몰아간다. 남들처럼 타인과 어울려 즐겁게 여가를 보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퇴사 후 관계에 지쳐 도망치듯 떠나온 나였기에 더욱 여유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중산층 가정처럼 번듯한 자가용과 단독주택을 소유한 삶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다. 사적 공간이 주는 자율성과 여유를 누리는 삶을 동경한 다는 것이다.



물론 꼭 교외에 산다고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소한 여유의 조각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군가에겐 답답한 철장 같을 수도, 누군가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자율성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노동이 끝난 후 물리적 시간이 남으면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친구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교외의 삶을 추천해봤자 달가워할 리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심정인 사람에게는 교외라는 공간은 노동과 여가를 분리하는 훌륭한 역할을 할 뿐만이 아니라 쇼핑 등으로 대변되는 단기적 욕구 충족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지나친 관계나 노동이 주는 압박감에 지쳐 사적 공간을 찾아도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혼자 조용히 동네를 산책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공간 말이다.


다시 한번, 나는 교외의 삶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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