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침입종은 오히려 호주인

동물사랑 환경보호의 호주, 그 아이러니

by Neonsky

외래 침입종(Invasive Species)은 오히려 호주인들


광활한 숲이 주는 짙은 초록과 자유롭게 뛰노는 캥거루,

느릿느릿 움직이며 끊임없이 유칼립투스 잎을 먹어대는 코알라,

하얀 포말이 일어날 정도로 굽이치는 파도와 이를 즐기는 서퍼,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깨끗한 모래사장을 끼고 태닝을 하는 사람들.

호주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몇몇 이미지들이다.


홀로 동떨어져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힘든 호주는 마치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신기한 생물들이 서식해왔다. 캥거루나 왈라비, 코알라는 물론 빌비와 같은 유대류는 호주 말고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동물들이다. 그런 만큼 호주에 사는 동물들 중 토착종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그런데 전 세계에서 동식물의 멸종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어디일까? 믿기 어렵게도 호주가 1위를 차지했다. 호주인이 처음 정착한 이후 육지에 서식하는 고유 포유동물의 11% 이상이 멸종됐고 21%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 당연히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유지하고 가꿔가는 나라로 인식되어 온 호주가 사막화와 물 부족 말고도 다른 자연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Rabbits around a waterhole during myxomatosis trials, Wardang Island, South Australia, 1938. Nationa


호주의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대표적인 외래 침입종은 토끼로 유럽인들이 호주에 처음 정착한 1788년에 배에 실어 온 것이 그 시초가 됐다. 초식동물이고 성격이 온순한 토끼가 호주 생태계에 미치는 위협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토끼는 토착 식물들의 멸종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같은 토착 식물을 먹이로 삼는 호주 고유종의 먹잇감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토끼는 번식력이 좋고 마땅한 천적이 호주 생태계 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격하게 그 수를 불려 나갔다. 불어난 개체 수의 토끼가 먹어대는 식물로 인해 토양의 부식을 촉진시켰고 이는 사막화로 이어졌다.


이에 심각함을 느낀 호주 정부는 '토끼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1600km에 달하는 토끼 철조망을 만들기도 했고, 토끼에게만 옮기는 바이러스를 살포해 그 개체 수를 조절하고자 했으니 말 다 했다.


성공했냐고? 아니 아직 진행 중이다. 토끼의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숫자가 어마 무시하다니, 계속해서 내성이 없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단다.



Feral cat with Major Mitchell Cockatoo

토끼와 더불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두 번째 외래종은 야생 고양이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별다른 천적이 없던 호주 생태계에서 야생고양이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버려진 음식물로 연명하는 길고양이가 더 이상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호주의 야생 고양이는 포유류와 조류 등을 잡아먹고 그 수를 급격하게 불렸고 반대로 토착종은 점점 그 수가 감소됐다.


오죽하면 동물 보호로 유명한 그 호주에서 토끼와 고양이만큼은 예외로 두고 '대량 학살'을 시전하고 있다. 실제로 호주 정부에서는 2020년까지 야생 고양이 200만 마리를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기들의 실수로 들여온 외래종 때문에 토착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또 다른 '동물 학살'로 '동물보호'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애완 인구는 전 세계 1위다. 높은 애완 인구만큼이나 국민들은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동물이 고통을 겪는 것을 안타까워해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오죽하면 '고통 없이 새우를 죽이는 방법'을 연구할 정도이니 그 사랑이 참 대단하다.(그래도 새우 먹는 건 포기 못하나 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량의 토끼 학살, 고양이 살처분, 때때로 캥거루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사냥 등을 하는 모양새를 보면 내 입장에서는 아니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환경론자도 아니고 동물 애호가도 아니다. 다만 호주 사람들의 양면성이 웃긴다는 거지.




한때 내가 살았던 퍼스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다. 1890년대 골드러시 이후 급격히 성장했으며 동쪽에 밀집된 호주의 대도시와는 다르게 홀로 서쪽에 위치해있다. 인구 150만의 대도시인 퍼스는 이제 가장 고립된 도시에서 가장 메말라가는 도시가 되고 있다. 그런데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넓고 푸른 잔디밭 그리고 수많은 나무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호주 사람들은 개인당 350리터 정도의 물을 사용한다. 그 용도를 분류해보면 10리터를 화장실에, 샤워에 200리터, 세탁에 150리터, 마시는 물은 10리터 정도다. 그런데 집 주위에 늘어선 잔디를 기르는 데 사용하는 물이 1000리터, 가구 당 높은 비율로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의 세차에 200리터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호주는 수자원 확보를 위해, 첨단 담수 시스템, 효율적 수도꼭지 사용, 누수감지장치 등을 도입하고 대대적 캠페인으로 물 부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세차에 200리터, 우리 집 잔디에 1000리터'를 사용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토양의 침식이나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해 잔디를 기른다고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외래종의 도입, 과도한 벌목으로 원시림을 없애버려 사막화를 촉진시킨 당사자가 뒤늦게 핑계 삼아 말하기엔 조금 우습다.



여기에 호주인들을 추가해야 할듯... 출처 : https://ib.bioninja.com.au/_Media/alien-species_med.jpeg


위에서 언급한 예시들은 면밀한 검토 없이 외래종을 도입하거나 자연에 개입하는 부작용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토끼나 고양이들을 외래 침입종으로 규정해 박멸하려 하지만 오히려 무분별하게 외래종을 도입하고 과도한 벌목으로 물 부족을 야기한 호주인들 자체가 외래 침입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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