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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an 05. 2022

가버린 연가

     가버린 연가(戀歌)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복잡한 그 거리가 생각난다. 온갖 인종의 흐름과 문화가 낮달처럼 생소한 것 같으면서도 부딪침이 어색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이국적인 거리는 그야말로 프리덤이다. 수많은 길들과 길들 사이사이 흐르는 기운들이 범상치 않다. 넘쳐나는 각국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색색의 사람들이 마치 자유로운 순례자들처럼 골목들을 메우고 있다.

 일 전에 이태원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얼마만의 이태원 방문이던가. 무척 오랜만에 맞닥뜨린 풍경이 사실 나로서는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함께 간 청춘의 방문객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날 동안 내겐 그곳이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 같은 거리가 부담스러워 오히려 핑계에 핑계를 대며 벗어날 궁리만 했으니.

 생소한 식사가 그런 데로 미감을 만족시키고 골목마다 숨어있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을 때가 되자 비로소 이태원이 반가워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초 이태원 이곳에서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이태원 거리는 지금처럼 화려하지도 젊지도 다채롭지도 않았다. 미 8군이 가까이 있다는 특성으로 간간이 지나는 군복 차림과 사복 차림의 미군들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그들을 위한 상가만이 다소 즐비할 정도였다. 물론 그들을 위한 상가라는 것이 어쩌면 사춘기 아이들에겐 지금보다 좀 더 호기심을 가지기 충분했을는지 모른다. 

 당시로서 흔치 않은 햄버거 가게며 보세점들. 내 눈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드레스 가게 그리고 양복점. 어두운 밤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지만, 간혹 부딪쳐야 했던 그들만의 술집들. 조잡해 보이는 민속 민예품 가게들. 이것이 이태원 거리가 보여주었던 전부였다. 아라비아 나이트에 나옴직 한 액세서리를 팔기 위해, 지금처럼 호객을 하는 노상의 이국 상인들도 없었고 세계 각국의 특성이 합쳐진 듯 다국적이지도 않았다. 발 디딜 틈 없이 유동인구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리는 한산했다는 것이 그때 기억이다.

 그러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 몽실몽실 따뜻하게 올라오는 것이 있다. 이태원의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지금은 없어진 콜터 장군 동상이 있던 삼거리를 지나 서빙고로 통해 있는 해밀턴 호텔 아래로 내려갈 때는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오른쪽 미 8군 담벼락에 쳐진 가시넝쿨은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그 안의 세상이 언제나 궁금했다. 금기의 세상처럼 보였지만 침을 발라 구멍을 뚫을 수 있다면 뚫어서라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나만은 아니었을 듯하다.

 언젠가 가까운 사람의 도움으로 그곳을 출입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그때 그 기억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군부대를 제외한다면 소박한 미국의 작은 도시를 구경하는 것 마냥 조용한 마을에 정겨운 기분을 가질 만했다.

 당시 지방에서 상경한 아이들이 많아서였는지 주변엔 하숙생과 자취생들이 모여 있어 그들만의 애환을 나누며 돕는 것은 서로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이 이태원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셈이다. 방과 후나 휴일엔 친구들이 찾아와 수다에 깔깔대기도 하고 김치를 담근다며 부산을 떨었던 소꿉놀이 같은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구석구석 골목이 많았던 이태원은 매번 미로처럼 돌아 집을 찾아 돌아왔는데 그런 재미는 무료한 생활을 덜 하게 했다. 무엇보다 어느 골목에 구멍가게가 있고 어느 골목을 돌면 누구를 만나고 어느 골목을 나가면 가고자 하는 길이 지름길이고 조금 멀어도 어느 골목은 내가 가고 싶은 골목이 있었다. 누군가 함께 지나왔던 곳, 누군가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골목이다. 

 대문을 열고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주황색 공중전화가 있는 담배 가게가 있는데 유일하게 동전 몇 개를 품고 두려움도 없이 밤 출입을 마다하지 않던 곳이다. 어쩌다 외부에서 유숙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골목을 들어서고 싶지 않아 천천히 발걸음을 미루곤 했던 다소 쓸쓸했던 기억을 지금 이태원 골목에서 찾고 있다. 이태원 골목에선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났고 누구든 만나면 따뜻했다.

 이제 예전 그랬던 골목이 아니다. 다른 곳이 되어 버린 그곳에서, 그 시절을 지금 그리워하고 있다. 얌전하다 칭찬에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층 집주인 아주머니. 최고의 K고교에 다니던 동갑내기 그의 아들. 아버지가 ‘킴노박’을 좋아해 이름 지었다는 내 친구 ‘강노박’. 언젠가 당직에 불러 햄버거를 사주셨던 담임선생님. 

 정신없이 번쩍이는 이태원 한가운데에서 시큰대는 가슴으로 서 있다. 손 닿을 수 없는 그곳을 찾아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면서 지금 그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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