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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an 02. 2022

신호등


                신호등     

 우두커니 서서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녹색 등이 반짝하고 켜지자 습관처럼 건너는데 아빠 품에 안긴 옆의 아이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저 등이 왜 깜빡거리는지 안다는 게다. 아빠가 “왜?” 하자 부끄러운지 아빠만 들으라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른 건너가라는 뜻이란다. "그러지 않으면 다치고 말아!”라는 경고까지 하면서. 아이는 두 돌이 갓 될까 말까 해 보였다. 작디작은 어린것의 입에서 나오는 정확한 발음과 어휘력도 놀랍지만 추리와 논리력도 대단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으려니 볼이라도 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그만 웃어 주고 말았다. 

 그 말의 여운을 가지고 신호등이 바뀔세라 서둘러 X선으로 된 복잡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출렁하며 울렁증이 오는 것 같다. 평범한 지금 상황이 특별한 풍경처럼 느껴지는 것이 왜일까.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함께 움직이고 있는 내 행동이 어색하다 못해 낯설다. 잠깐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하게 된다. 어쩌면 정말 생각지 못한 일이 잠시 후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총총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면서 속으로 조금 전 아이가 한 그 말을 나도 한번 중얼거려 보았다. 인생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남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두운 일이 나에게는 그럴 리 없을 것이라는 오만 아니면 편견을 가지고 들 산다. 그것이 불행이라면 상대가 딱하기는 해도 나만은 더욱 비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혹은 그렇게 오고 만 그들 불행에 운도 능력이라 여기며 스스로 능력을 과신하고 마는 교만함도 간혹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견딜 수 없는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느 날 사고처럼 달려들어 얌전했던 내 삶을 제멋대로 해놓고 무심히 가버리고 마는 것이, 내게도 있을 수 있는 악운이다. 

 살아보니 불현듯 뒤통수를 치는 것이 인생이었다. 정신을 놓고 있다 느닷없이 당해야 한다. 그럴 경우 무작정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할 뿐 도리도 없다. 사랑도 실연도 그렇게 오고 죽고 사는 문제가 다 그렇게 온다. 어느 땐 여러 것이 한꺼번에 와 정신을 놓아버릴 지경까지 된다. 이럴 때 운명이 아이 말처럼 깜박거려주었더라면 급히 뛰어 달아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인생에서 느닷없이 붉은 등만 켜졌던 것은 아니었다. 예고 없이 푸른 등이 켜져 기쁨을 주었을 때가 없기야 하였겠는가. 생각지도 않았던 좋은 인연이 찾아와 평생 곁을 지켜 주기도 하고 갑자기 바라지도 않던 거액이 생겨 여행을 떠나라고 할 때도 있었다. 힘들고 지쳐 사막 모래바람 속에 홀로 있는 느낌일 때 갑자기 누군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 줄 때도 있었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을 때쯤 갑자기 달려들 듯 얼른 그러라고 부추기는 그 마음에 그러고 말 때 예고 없이 푸른 등이 켜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기쁨을 준비하라 이르는 친절한 깜빡거림이 아니다. 행복한 인생이라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행복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법. 그런 순간을 벗어나는 것도 한순간이니 단지 그 순간을 맥없이 잃지만 않도록 조금만 친절하게 예고해 줄 수는 없는 것인지. 기다리지 않던 행운이 선물처럼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과 해일처럼 덮친 불행의 공포가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그런데 또한 차분히 생각해본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리 생각만큼 무지막지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행운보다 가엾은 불행에 마음을 좀 더 써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미 예감과 예지로 깜박여 주었는데 무감각과 무지함이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쳤을 것이라고. 갑자기 당하는 천재지변에서조차 알 수 없는 현상이 따르는 것을 보면 틀리지 않은 생각인 듯하다. 세계적인 대 재앙에 반드시 등장하는 쥐, 메뚜기, 두꺼비 떼들의 거대한 이동과 기이한 자연현상을 보아왔다. 비록 비과학적이기는 하나 그에 견주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엄청난 천재지변뿐 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 느낌이 앞섰던 일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올 불행을 불확실하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만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다며 조용하게 온 경고를 놓치고서 얼떨결에 당했다고 말했다. 어두운 미래를 예측하고도 대비하지 못해 스스로 고통을 얻었다면 내 인생이 고약하다 탓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 아이 말처럼 신호가 바뀌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려 교만과 편견에서 나온다면,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까짓 붉은 등이 켜진들 살아볼 만한 인생은 아닐까. 

 그런데 정말 나, 그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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