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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an 16. 2022

무조건 내 탓일지도 몰라

  무조건 내 탓일지도 몰라

                                           

 며칠째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새해라고는 하지만 내 마음의 기운 탓인지 밖의 기운 탓인지 아직은 희망을 노래하기는 이른 듯하다. 벌써 한 해가 갔다. 생각할수록 마음 상했던 일이 많았던 해였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닫아걸고 나니 스치는 풍경까지 문을 닫아걸었다는 사실도 알게 했던 해다. 언제나 같은 길을 오가고 같은 도로를 달리면서도 모퉁이에 어떤 상가가 있고 하늘이 어떤 색인 지도 모르고 지나쳐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무릇 아주 가까운 사람들한테 다쳐 분노와 원망이 서렸었던 해이다. 그래서였는지 유난히 지난해는 길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들 탓만도 아닐지 모른다.

 오전 라디오 프로에서 들은 일화가 하루 내내 머리에서 맴을 돈다. 역무원이 기차에 올라 매표 검사를 하는 중이다. 그는 무슨 불쾌한 일이 있었던지 더없이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더구나 검표마다 차편이 잘못된 것인지라, 승객에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기차를 다시 갈아타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역무원은 한 번 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오늘따라 왜 이런 거야 짜증스러웠는데 한 승객이 조심스레 말을 했다. 혹시 당신이 잘못 탄 것은 아니냐고.

 가끔 나도 저 역무원 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그러고도 우기기까지 해 결과가 드러나면 민망해 죽을 맛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누구와 크게 다툰 적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한들 별것 아닌 일로 내가 옳다고 끝까지 겨루는 성격도 못된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하고 설사 내가 옳다고 해도 끝까지 갈 때까지 다할 배짱도 없고 기력도 없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주 상대하고 싶지도 않고 어찌 보면 귀찮아서 피하고 마는 쩨쩨한 성격인 탓이다.

 그런데도 정말 그럴 때가 있다. 틀린 상대가 너무 우기는 것이 기가 막혀 괘씸하기도 하고 정말 내가 옳다는 생각이 심지를 굳게 할 때다. 이처럼 정확한 경우인데도 어쩌다 역무원 같은 짓을 하여 낯이 뜨거워야 한다. 혹시 그럴 경우, 얼른 실수를 인정하고 백기를 들어 정중히 사태를 무마하면 인간적인 측면에서 넘어가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다. 잘못을 했건만 ‘내가 틀렸네’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비 과정에서 지나치게 상대가 몰아쳐 그 사이 마음이 상해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치심과 분노가 쌓여 모른 척 넘어가고만 싶다. 물론 순전히 내 잘못인 것을 안다. 그러니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싶은 승자의 입장인 상대는 바보 같은 내가 얼마나 가엾고 딱할까. 

 ‘아주 가까운 사람’을 말하고자 하면 기준이 애매하다. 굳이 정의하면 절친한 친구기도 하고 연인일 수도 있겠고 함께 기거하는 가족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혈육인 경우라면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평생 동안 강박관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가족에게 받은 상처라고 한다. 가족 중에서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니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보면 매사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딸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엄마가 너에게 준 상처는 없느냐고. 그러자 녀석은 다 잊었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얼마나 서늘했는지.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올해처럼 살을 에는 아픔을 한꺼번에 받은 적이 있었을까. 쌓여 왔던 묵은 상처까지 쏟아져 일시에 치러야 하는 슬픔은 쓰라려서 견딜 수 없게 했다. 이런 경우 점잖은 말로 부덕의 소치라고 하던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여 나를 낮추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운하고 야속한 것이 정도를 넘어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상태마저 되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많은 시간을 많은 생각들로 보냈다. 어느덧 스물 거리던 상처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분노도 아니고 억울한 것도 아닌 것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처럼 상대의 부재가 익숙해졌다. 다시는 상대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끔 좋았던 시절이 생각나 문득 추억되기도 했지만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혹독하기는 하나 이미 오래전에 조금씩 치렀어야 할 시련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홀로 서야 하지 않았느냐며 스스로 위로를 하자 편안해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후 더 많은 시간들이 지나갔다. 하니 이제 이쯤에서 저쪽에서 ‘그래 내가 부족했어’라고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대를 이해할 것 같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웃을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아직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그럴 마음이 없나 보다. 어쩌면 지금 나처럼 차라리 편안한 마음이 그에게 없으리란 경우도 없다. 혹시 마음이 상해 실수를 용인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실수를 몰아 부친 내 탓일지 모른다. 

 준 쪽은 없는데 받은 쪽만 있는 것이 상처라고 한다. ‘그냥 한 말인데’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진즉에 말하지’ 상처를 준 쪽에서는 흔히 그렇게들 이야기한다. 그들 잘못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이해 못 한, 속 좁은 네 탓이고 참기만 한 네 탓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모두 내 탓이다. 그동안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은 것. 필요해도 필요하다 보채지 않은 것. 싫은데 싫다고 말할 줄 몰랐던 것. 요구할 줄 모르고 주려고만 한 것. 좀 더 이해하고 용서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 것. 

 창 밖에는 서설이 내려 지붕과 땅을 덮어 세상을 환하게 한다. 멀리 바라만 보는데도 이불처럼 포근하다. 그러나 눈은 곧 조금씩 녹아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포근함도 떠날 것이다.그렇게 떠나간 모든 것들은 제 모습을 가지고 다시 오기 어렵다. 올해는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잃지 않게, 그들로부터 내가 떠나지 않게, 부디 역무원처럼 잘못하지 않게 해 달라는 소망을 쌓인 눈을 보며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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