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려 막 거리를 가려던 참이다. 무심코 곁을 보니 보기에도 움찔할 만큼 험한 상처를 지닌 사람이 곁에 있지 않은가. 그러다 잠깐, 그가 내 표정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편견에 약한 치부를 보인 듯 해 순간 부끄럽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내내 환승한 버스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무심히 본 탓인지 그의 모습을 그제 서야 보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우연인지 그와는 동행처럼 자꾸 한 길을 같이 가게 된다. 마침내 6, 7분 거리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만 정말 같은 곳에 닿고 말았다. 하물며 같은 일을 하는 이였다니. 그쯤에서 조금 이상한 것이 그를 보는 내 불편함이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보다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비껴가기만 했던 짧은 동행임에도 그에게 다소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동료’라는 친밀감이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거북함’이 점점 아무렇지 않아지려고 했다.
내세울 것 없는 봉사를 여러 해째 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그 같은 일이다. 그 후 그와는 아주, 가끔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첫 대면에 민망함도 있어 이쪽에서 먼저 가벼운 인사 건넸고 목례를 나눌 만큼 되자 잠깐 차 한잔의 시간이 기분 좋을 만큼 되었다. 어느 날은 그의 안부가 궁금해 담당자에게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조금씩 알게 된 그의 사정은 놀라웠다. 언젠가 방송을 통해 사고로 엉망진창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어느 여대생의 예뻤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깊은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그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를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매스컴에서 접하는 그녀는, 그녀의 삶은 사고 전 모습처럼 여전히 예쁘고 아름답다. 그 또한 지금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누군들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무르팍에 한두 개쯤 흉터는 물론이고 내 몸 어딘가에 내 맘 어딘가에 흉터는 있기 마련이다. 어느 틈에는 기억에도 없고 흉터에 마음을 두고 있지도 않지만 그렇게 딱지가 앉고 흉터가 아물 때까지 상처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 괴롭히고 아프게 했을까. 굳이 동병상련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가진 상처는 보는 이에게 보듬게 하는 따뜻함이 있어 이율배반적이다.
상처는 보이는 곳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상이라면 차라리 주변 안타까움이 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일 수 없는 정신적 상처에는 어쩌지 못할 것이 있다. 아픔의 정도가 달라 혼자만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자 겪어야만 하는 말할 수 없는 상처는 누군가와 나눌 수 없어 외로움이 고통을 더 해준다. 간혹 감춰져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처를 볼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 상처도 누군가 보는 이가 있겠지, 하고 마음을 쓰다듬어 줄 때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라는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상처도 더디 아물다 오랜 세월 함께 가다 보면 상처는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살아질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지는 것은 비단 본인뿐 아니라 주변 가까운 이들 모두가 그러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처가, 상처가 아니라는 의미 또한 아니다. 다만 아, 그랬지, 망각한 듯 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