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기쁜 소식과 함께 모처럼 늦가을 비가 소리 없이 오고 있다. 오랜 친구가 시집을 간다. 며느리를 볼 나이에 어느 댁 며느리가 되는 것이다. 올해가 가지전에 그녀가 정말 시집을 간다는 기별이다. 나로서는 오랫동안 소망하던 일이다. 그러니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적극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그녀가 일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잘했어! 아주 잘했어!”로 축하를 전하는데 살짝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은 왜였을까. 마음이 들떠 내가 먼저 혼수 거리를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촉촉해지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가끔 내려가면 함께 뒹굴던 채마밭이 보이던 작은 방이 그리워서일까. 그 방을 생각하면 지금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어야 할 텐데. 올라 와선 며칠간 일손이 서툴기도 했으면서.
동쪽으로 비껴 난 창을 통해 길게 들어온 뜨거운 햇빛은 여름날 아침을 참 서글프게 했다. 이런 방에서 혼자 지낼 그녀를 생각하면 사실 잘 지내고 있는 친구와는 다르게 어린 자식이라도 떼어두고 오는 기분이었다. 작은 방을 오가며 모처럼 내려온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그녀가 활기차 보였다. 잠시 둘이 있는 시간이 밤을 지새워도 나도 좋았고 그녀도 좋았다. 함께 있다 다시 올라와야 할 때 내 당부는 오늘은 언니네 가서 자고 오라는 말이었다.
혼자 아프지는 않을까, 불현듯 외롭지는 않을까, 가끔 서럽지는 않을까. 그럴 때마다 누군가 그녀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까다로운 그녀가 쉽게 내 몸 같이 내 살처럼 가까운 관계가 되어 누군가와 지내기란 어렵다. 그러니 그것이 반드시 결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내가 있는 이곳에 살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런데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결혼이 소망처럼 이루어졌으니 아쉬움보다 기쁨이 더 큰 것은 당연하다.
가끔 그녀의 단점을 지적하며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이가 있니? 그래, 너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지,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나 좋은 점이 많은 친구다. 동정심이 많고 또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재주도 많은 아이다. 무엇보다 미적인 감각과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그런데다 모두를 즐겁게 하는 재주까지 있으니 그녀가 그것들을 잘 사용할 것이므로 그녀 결혼 생활은 걱정할 것이 없겠다.
이제 그녀는 장년을 넘긴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새댁이 된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가끔 갈등도 겪게 되고 후회도 몇 번쯤 하게 마련이지만 부부라는 것만큼 더한 존재가 없다는 것도 아직 그녀는 모른다. 뜻하지 않게 한꺼번에 생긴 가족들이 그녀를 힘에 부치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모를 때가 좋을 때라는 것도 그녀는 다행히 모르고 있는 눈치다.
지금 나는 딸을 보내는 친정엄마 마음이다. 오래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아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살점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아 쓰라리기도 하고, 휴~ 하고 이제 한숨 던 마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제야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면 걱정도 되지만 늦게 출발하는 시작이니 더욱 값져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힘껏 노력해서 몇 배 행복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촉촉했던 것은 늦가을에 내리고 있는 비 때문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