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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Apr 10. 2022

고마울 게 많습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자식은 애물’이라고 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애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식은 ‘애물’만 되면 부모로서 본전이다. 누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느냐고 대항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밑지는 농사가 자식 농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자식만큼 귀하고 좋은 것은 없는 듯하다. 


 혼기를 놓친 나이임에도 두 아이가 결혼에 생각이 없는 눈치다. 이런 큰애에게, 엄마가 네 나이에 너는 중학생이었어, 했더니 그래서 엄마 좋았어? 한다. 웃고 말았는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두 아이가 결혼을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늦은 나이에 자식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흔들다가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맘을 알지, 생각을 하게 되면 또 끄떡이게 된다. 그래도 엄마인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 자식 고생은 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서 자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무슨 위로든 해야 할 텐데 자식들은 원래 그러는 거야, 하고 만다. 찾기가 어렵다. 모처럼 휴일에 생각 없이 쉬고 있는데 가까운 이의 카톡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안부가 궁금하던 차였다. ‘꽃이 저렇게 예쁜데 예쁘지가 않아’. 쿵! 가슴이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친구는 작년에 큰아이를 멀리 보냈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충격이었을 텐데 서너 달 큰 혼란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안다, 그 마음을. 직장에서 늦게 만난 우리 둘은 또래 아이들이 있다는 것 외에도 존중해 가며 유난히 좋아했던 사이이다.


 그 일 이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밥을 먹으러 다녔고 운전을 못하는 그녀를 위해 함께 딸아이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딸만 같았다. 딸 가진 엄마들에게 딸은 어떤 존재이던가.


 좀 더 시간이 많이 가고 나서 아주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엉엉’, ‘엉엉’ 소리 내어 나도 울었고 그 울음들은 참았던 울음에 이자가 붙어 엄청나게 울렸다.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아이의 죽음을 그때 서야 풀어내듯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늘 봉오리가 터지는 벚꽃을 본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남편의 가까운 사람이 또한 어린 아들을 잃었다. 당시는 납골당 대신 물가에 뿌려야 했는데 젊은 아빠는 뿌리다 말고 재를 털어 입에 넣더란다. 무뚝뚝한 남편은 전하면서 격하게 울었다. 나도 울었다.


 주변의 또 한 이가 군에서 아들을 보내야 했다. 함께 활동하던 문우였는데 그녀 역시 나와는 막역했다. 아빠는 아들이 사경을 헤맬 때 군 생활을 시작한 논산부터 아들의 근무지였던 포천까지 배낭에 태극기를 꽂은 채 걸었다. 우리는 그 마음으로 함께 했는데 부모에게 자랑이었던 아들은 이기지 못하고 힘에 부쳐 그만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40km가 넘는 길을 매일 아들을 보기 위해 나섰고 묘역 주변을 예쁘게 차려놓고 한참 동안 아들과 이야기하다 돌아온다고 했다. 수술 후 병원에서 만난 아들은 아줌마 오셨느냐며 반듯하게 인사하던 모습이 희망을 주었는데 아마 잠깐의 신기루였나 보다. 어쩐 일인지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지만 흉사의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생각나는 친구다.


 자라면서 잔잔한 병치레가 있었다고는 해도 결혼 후 두어 차례를 크게 치러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온 순서대로 가자고 주문처럼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 덕분이었는지 나는 건강해졌고 아버지를 12년 전에 보내드렸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를 지켜주시는 듯하고 아들 또한 할아버지가 꿈에 보이면 웬일인지 위험에서 벗어난다고 정말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 작은 녀석이 무슨 일이었는지는 잊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괜찮아. 자식이 밥 먹고 엄마 속 썩일 일밖에 더 있겠니, 웃으면서 말했지만 물론 자조는 아니었다. 정말 자식은 부모에게 그럴 일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면 되는 일이다. 여든여섯 어머니 앞에서 나도 지금껏 그러고 있지 않은가.


 혹독한 분을 인생에서 만났는데 그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적이 있었다. 작은아들을 먼저 보낸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분도 가셨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이 저릿하다. 평생을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까 하고.


  “엄마는 내 맘 몰라! 나 밥 안 먹어!” 이렇듯 사랑스럽게 권력을 부리던 막내도 곧 마흔이다. 

 고맙다, 얘들아! 잘 자라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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