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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Mar 30. 2022

첫사랑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때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지만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속절없던 시절이었다. 도리 없이 가버린 시간들이다. 그리고, 나이 든 지금에도 첫사랑이란 말에 가슴부터 설레고 마니. 


 사람들은 모든 사랑이 다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젊은 날 청춘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또 있을까. 그것도 첫사랑이라면. 소중한 감정들이 가꾸지 않아도 섬세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어서다. 긴긴 아픔이기만 했던 그때가 잊고 있다  이렇듯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테다.


 어느 때는 영상과 문학을 통해 사랑으로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렁같이 아련한 동질의 아픔 속으로 나도 함께 그들이 되어 빠져든다. 그러고 나면 한참 동안 어수선한 것이 최면에서 풀리기나 한 듯 어지럽기만 하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짜리 첫사랑 드라마가 다시 나를 그렇게 만든다.


 사랑은 아픔이다. 기쁨도 아픔이고 행복도 아픔이다. 그것이 슬픔이기도 한 것처럼 그렇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 그렇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을 나나 무스쿠리의 음성으로 들을 때면 아주 좋다. 듣고 있노라면 깊은 운명 같은 것을, 슬픈데도 포근하게 안아주니 참 알 수가 없다.  사랑이다.


 첫사랑 이야기는  역사처럼 모두에게 있는 일이다.  나의 첫사랑은 스무 살이 되어 찾아왔는데 엄밀히 따진다면 첫사랑이라 이름 짓기가 모호하다. 혼자 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이른다면 감추고 몰래 하여 그가 알지 못했던 사랑이었다. 그러니 첫사랑보다는 숨어서 한 짝사랑이라 말하는 것이 좀 더 옳을 것 같다. 그는 무례했고 볼품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가슴이 뛰었는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해 유월에는 우리 집 담장의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아주 볼만했었다. 그렇게 담장을 넘어 내게 온 것 같은 그 사랑이, 반드시 처음부터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부터 희망도 없는 사랑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런 두근거림을 가슴에 수년 동안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후에 우연히 이 마음을 그가 알게 된 적이 있었다는데 ‘설마 그 친구가 그럴 리가?’ 했다니 이래서 사랑은 운명이라고 하나보다. 참으로 오랜 세월 그 때문인지 체질 때문인지 나는 꽤 앓아야 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아픔으로 가족을 긴장시키기도 했으니 나름대로 톡톡히 치른 젊은 날 사랑의 열병이었다고 하겠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훨씬 더 지나 나이가 든 후 그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희망도 없는 사랑이라, 놓아 버리는 것이 아쉬워 자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그것이 사랑이라 믿게 만든 비겁함은 없었을까. 그것보다는 나는 실패가 두려웠다는 생각이다. 그때는 왜 사랑 앞에 그처럼 자신이 없었나 모를 일이다. 당돌하던 시절이었건만 유독 사랑 앞에서는 그랬다.


 부끄러운 사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즈음 나도 누군가의 사랑을 눈치채지 못하여 떠나게 한 경험이 있다. 이래서 또한 사랑은 운명이라고 하나보다. 그도 아마 나처럼 드러내 놓고 사랑을 하기에는 사랑의 실패가 두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사랑의 정체성에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의 사랑 앞에 대단하지 않은 열등감으로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그도, 나도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이가 더 되어 아주 용감한 사랑을 만났다. 이런 사랑이 나에겐 낯설었지만 마침내 사랑으로 완성된 존재를 얻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용감한 사랑을 얻게 된 것에는 비겁했던 사랑이 더 많은 용기를 주었다.


 가끔 첫사랑의 정의에 고민해 본다. 누군가 물어오면 무어라 말할까. 언제 치렀느냐고 하면 언제라고 해야 할까. 숨어서 혼자 한 사랑도 고귀하지만 둘이 나누어 함께 한 사랑도 나에겐 첫사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자에게 첫사랑을 정의함은  사랑이라 말하기 어려웠던 그  사랑을 떨리는 ‘첫사랑’에 두고 싶은 까닭에서다. 드라마에서 이렇게 정의해 준다. 짝사랑을 첫사랑이라 알지 말라고, 넌  첫사랑을 시작도 안 했다고. 아, 그들도 나도 청춘이었다.


 어느덧 온데간데없어진 시절이 되었다.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 그와 함께 상상해 본다. 그 시절로 돌아가 같은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럼 어떤 세월을 살까. 여전히 살아왔던 것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웃고 만다. 

 그런데 정말 돌아간다고 그 사랑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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