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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Mar 09. 2022

그래서 우리 행복하지요


       

 겨울도 끝나가고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실제 봄도 멀지 않았다. 어둠이 두렵기만 했던 겨울이 조금씩 어둠에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바싹바싹 마르던 입안의 침이 고일 생명의 힘이 느껴진다. 어느새 봄이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성급한 착각에 빠져 든다. 그러기만 한다면, 겨우내 곁에 있던 우울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간절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운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여쁜 유명인이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이다. 또 다른 그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어 접하게 된 안타까운 비보다. 창창한 미래가 있고 무엇보다 풋풋한 인생의 봄날을 자유롭게 누려야 할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선지 가족처럼 마음이 아프다. 그들에게 봄은 그저 요원하고 겨울은 깊을 뿐이라는 그늘진 착각만 있었나 보다. 모두 부러워할 만한 넉넉한 조건을 갖춘 청춘이었건만 어두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열등감 없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마는 누구나 조금씩은 타인보다 자신이 좀 더 월등하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자신한테는 남보다 나은 매력이 있다고. 혹은 나는 조금 특별하다고. 요즘 유행하는 어느 광고의 ‘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 하는 내가, ~ 하는 내가, ~ 하는 내가 좋다. 나는 나다!’라는 카피처럼. 듣고 있으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아 슬슬 웃음이 나온다. 착각은 웃음거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근래 들어 높아가는 자살률을 보면서 웃음거리 이기는 할망정 ‘제 잘났다’는 착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자꾸 느는 것 같아 안쓰럽다. 돈키호테라 조롱받을 수 있다지만 나도 어딘가 너 못지않게 잘났다는 착각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더 잘난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함께 섞여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착각은 나를 아깝게 여겨 가치 있게 하기 충분하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라고 한다. 


 어쩌면 열등감 역시 남보다 부족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착각이라고 하면 남보다 앞선다는 우월감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돈키호테가 불의에 용맹스러웠던 것은 광적인 환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신념의 사나이라는 우쭐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모두에게 깊은 생각과 친근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니 돈키호테는 조롱받을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존을 생각하게 하는 철학가라 하는 것이 더욱 옳다.


 가끔 행복이란 모호한 단어에 매료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에서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단언하여 행복은 착각의 일부라는 의미이다. 잘하고 있다는 착각,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착각. 내 것이라는 착각. 아직도 예전 같다는 착각.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착각. 그리 하다 보면 정말 그래지는 것을 그래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행복은 어설프고 불확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착각이 있어 이처럼 완벽하다. 


  인생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한다. 이를 착각의 또 다른 방법이라 하여도 틀리지 않다면 행복이라는 의미를 이를 통해 얻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는지. 물론 착각에서 오는 혼란이 간혹 생과 사를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이 위태로울 때 착각은 약이 되기 충분하다. 그러니 비록 돈키호테 식 망상이라 비웃음을 받을지언정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착각이라면 더 이상 큰 효과도 없지 않겠는가.


 정말 봄은 아직 저 너머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의 긴 터널이 멀리서 작은 빛을 내보이고 있다. 늘 그래 왔지만 또다시 그 빛에 미래를 걸어 본다. 기다리면 무언가가 와 줄 것 같은 착각이다. 수주대토의 마음으로 그래서 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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