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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an 23. 2022

 나도  할 수 있어

   

 한동안 버킷리스트라는 세련된 용어가 유행을 하던 적이 있었다. 생전 접해 보지 못했던 요상한 ‘버킷리스트’란 멋진 단어가 어느 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신선하게 알려지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습관처럼 한 번씩 따라 하던 때였다. 

 큰 병치레로 시한부 목숨을 지닌 인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정해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뭉클하면서도 남의 일 같지 않아 대리만족하기 충분했던 내용이다. 

 사실 굳이 버킷리스트라 하지 않아도 그저 살면서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라든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말 거야’ 하는 바람 하나둘 정도는 누구든 각오처럼 가지고 있을 듯하다. 수개월 못 박힌 시한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삶이 스러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 정해져 있다면 시한부 아닌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버킷리스트에 미리부터 올려 마치 꿈을 꾸듯 실행해 옮겨 본다면 세월이 가는 것이 그다지 무자비하지는 않을 것도 같다.


 생각해보니 내게도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름하여 나의 버킷리스트라 할 수 있다.      

 자유롭게 바람을 가르며 멀리까지 달려보기, 그러기 위해 자전거 배우기.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는 작은 악기 하나 익히기. 

 몸치에서 벗어나 가장 자신 없던 댄스에 몸을 실어보기. 

 친정엄마, 내 딸과 더불어 일주일간 자동차 여행 즐기기. 

 나를 위해 일천 만 원도 보상해 보지 못했던 것에 부끄러워하며 눈 딱 감고 통쾌하게 질러보기. 

 어딘가로 떠나 그곳에서 잠깐 눌러 살아보기.

 기쁨이 굉장하다는 봉사로 이기심을 부려보기.

 가끔 생각나는 오래전 사람을 찾아 그때는 미안했다고, 내가 부족했었다고 늦기 전에 꼭 전하고야 말기.

 두고두고 손주들이 할머니를 기억하기를 바라며 녀석들만을 위한 동화집을 완성하기. 

 내 몸 어딘가가 누군가에게 쓰임이 된다면 아낌없이 나눠주고 떠나겠다, 약속하기.   

 무엇보다 마지막은 나를 보내는 두려움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그들  배웅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이곳을 먼저 떠나기, 내 인생 가장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문득 하고 싶은 것들을 거침없이 나열하고 있으려니 따뜻함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인지 온전히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대단히 별것 아닌 것들인데 왜 한두 가지쯤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았던 것일까.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면 지나간 시간이 그만 헛헛해지고 만다. 무의식 저편에선 이것들을 염원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지 확인하게 된다. 오히려 간절한 열망이지는 않았을까. 


 새삼 새로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실행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은 현실 이상의 세계, 어쩌면 흔하디흔하다는 동경일지 모른다는 무모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실행’에 대한 두려움을 주었음을 인정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내게는 환타지처럼 막연하고 아득하여 그냥 한번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못할 것이 아니어서 이 정도의 리스트라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들이란 배짱도 생긴다. 이제 도전해볼 만하지 않겠나. 분명한 것은 신만이 알고 있어 긴 세월이 될는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씩 실현되었을 때 얻게 되는 짜릿한 쾌감과 통쾌함은 이미 상상 이상일지 모른다. 포스터 속 파안대소하는 두 배우의 사진이 말해 주고 있지 않나. 


  최근에 본 영화에서 여 주인공이 하나씩 실현되는 순간마다 '체크', '체크'하는 밝은 음성이 통쾌함을 넘어 짜릿함을 주어 카타르시스하기 충분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자, 마치 긴 여행을 위해 가방을 챙기는 듯 두근대며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렘과 돌아와서의 편안함이 묘미이다. 지금 이 기분과 함께 편안함과 자유로움으로 마지막 항목이 실행됐을 때를 기대하며 자신과 약속이 될지 모를 계획에 서둘러 도전해 봐야겠다.

  '체크!'


*버킷리스트는 ‘Kick the Bucket'(바스킷을 차다)라는 중세 사형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형수가 목에 밧줄을 걸고 양동이 위에 올라가면 양동이를 발로 차버리는 사형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죽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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