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네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래된 사람에게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때 아꼈던 사람이 감정을 자주 건드리는 것이 불편해 떠나려고 했었고 심하게 서운한 것이 가슴이 아파 떠나고 싶었고 내 맘 같지 않게 정분이 틀어져 떠날까도 했다. 같이 있으면서 늘 떠나고 싶은 사람, 제발 날 찾지 않았으면 하는 이들이 그렇게 가끔 있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데다 이런저런 탓으로 좀처럼 그러지 못했던 것은 같이 한 시간의 가치가 모두를 상쇄하고 남는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그런데도 정말 싫어, 너를 떠나고 말 거야, 할 때가 있다.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고 인간관계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정말 떠나고 싶을 때. 인연이 끝나서 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관계 총량을 계산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간의 가치나 우유부단함에 앞서 어느 것을 취해야 할지 득실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따져보다 보낸 이가 왜 없었겠는가.
이에, 결혼생활이든 혈육 관계든 다르지 않다고 한다. 언젠가 유명 정신과 의사의 조언이 그랬다. 부모 형제 자식도 자신을 피폐하게 하면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할 때 놀라웠지만 지나고 나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떠나지 못했던 경우는 ‘그래도 네가 있어서 좋아’ 서였기 때문이다.
아침 향기가 차다. 도로엔 이미 벚나무 잎이 갈색으로 뒹굴고 있다. 훅, 하고 덤비는 그 향에 그만 잊은 줄 알았던 이가 그리워진다. 얼마만 인가.
시작은 별 의미가 없었다.
어쩌다 들리는 모임이었는데 서로 눈여겨보던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적극적이어야 할 계기가 있었다. 서로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가 생긴 탓이다.
그러면서 가까워져 오랜 시간 믿음과 우정이 계속되었지만 좀 더 적극적인 관계로 하여 어느 사이인지 시큰둥해지면서 흐지부지해졌다.
흔히 들 우정이든 애정이든 적극적인 이가 승리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습지만 그런 의미로 나는 패자인 셈이다.
벌써 먼 수십 년 전 일이다. 무슨 이유였을까? 지나가는 찬 바람에 그리워지는 사람이다.
또 한 사람.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가끔 네가 그리울 때가 있다. 둘 또한 데면데면하던 사이였고 서로의 관심거리에 전혀 들지 않았던 사이였다. 성악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만 건성으로 알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우연히 따뜻한 걸음으로 그녀가 내게 왔다. 그날은 결혼하고 우리 집에 식탁이 처음 들어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나 보다. 시끌시끌 둘레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식탁이 생겨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때다. 혼자 조용히 다리를 꼬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 화사한 분홍 투피스를 입고 온 것 외에 손에 무엇을 들고 왔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나름 꾸민 식탁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데 분홍 투피스 같은 목소리로 대중가요를 성악으로 불러주지 않는가. 가슴이 뛰었다.
이제는 멜로디도 기억나지 않지만 메조소프라노 음성으로 가끔 우리 가요를 들으면 난 네가 그립다.
그러다 또 언제부터일는지. 우리는 소원해졌다. 내가 떠났는지 네가 떠났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은 또 무슨 이유였을까. 너한테는 아우라가 있어, 이렇게 힘을 주던 너였다.
이래저래 떠나간 사람들. 이제는 너무 멀리 있는 그들이다. 점점 사람을 안다는 것이 두렵고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게 무슨 이율배반인지.
하던 일을 멈추고 순간,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다. 조금쯤 헛헛하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배고팠던 그 시절. 아,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하는 것처럼.
혹시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은 어쩌면 너그럽게 쳐 준 그들의 유효기간 덕분은 아닐지 모르겠다. 혹은 내 가련하고 딱한 것이 총량의 법칙에 넘치게 적용 된 것은 아닐까.
새삼 포근하게 ‘그때 그 사람’이 궁금하다. 갈수록 부끄러워지면서 애틋해지는 옆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