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한 회사에서 일했다.
부서 이동을 몇 번 했고 그때마다 업무가 바뀌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성과를 내야 할 때는 성과를 냈고, 운영을 맡았을 때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업무를 했다. 실수도 있었고,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매년 급여는 조금씩이나마 오르지만 일은 수월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일도 상사가 바뀌면 업무 강도가 달라진다. 경쟁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조직은 최상위까지 올라가지 않는 한 권한을 갖기도, 수월하기도 어렵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권한도 없이 격무에 시달릴 것이다.
역시 사람이다.
일이 많을 때도 좋은 사람들과 일했을 때는 할 만 하다는 생각을 했고,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할 때는 일이 적어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상사는 내가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주었고, 좋지 않은 상사는 확신 없는 일을 지시하고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질책을 했다.
나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싫었다.
직책자임에도, 담당자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의사결정을 미루고 그게 잘 안되면 마지막까지 결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 대부분의 업무가 칼같이 결정하기 힘들고 답을 내기 어렵다. 완벽한 결정은 불가능하고 어느 순간이 되면 결정을 하고 지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결정은 지연되고 그에 대한 보고서만 쌓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동안 존버라는 말이 유행했다.
고단한 삶은 어쩔 수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틸 수밖에 없다는 거다. 왜 삶은 고단해야 하나? 왜 공부 때문에 친우와 경쟁해야 하고, 평가와 승진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와 경쟁해야 하나? 구조적 문제를 얘기하면 빨갱이가 되고, 승리자로 남아 잘난척하면 기득권이 되며, 경쟁에 뒤처지면 그저 루저로 남는다.
좋은 책과 커피향 나는 작은 공간이면 충분히 행복할 내가 얼마나 더 존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말에 집에서 회사 컴퓨터를 꺼내 일하면서 놀아 달라는 아이에게 방해된다며 짜증 내는 나 자신을 얼마나 더 참아낼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