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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Aug 13. 2017

택시운전사

요즘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벌써 7백만을 넘어 1천만 관객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영화적 만듦새나 역사에 대한 시각이 군함도와 달리 비범하다는 평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비극의 주범인 어떤 파렴치한 인간은 아직도 호의호식하며 살면서 영화에 대해 법적 대응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했나 보다.


어린 시절 글로 접한 80년 5월의 광주는 나에게는 마음속 깊은 곳의 악몽으로 남아있다. 실제로는 전혀 겪어본 적 없음에도 글을 통해 상상 속에 구현된 당시의 끔찍함과 잔학함은 어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후 나는 5월의 광주와 관련된 어떤 영화도, 책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스티븐 핑거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폭력은 인류 역사의 기나긴 세월 동안 점진적으로 감소해왔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 감각, 이성 등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방향성 또한 리바이어던, 상업의 확산, 세계화 등 온화한 본성을 선호하는 쪽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극한의 폭력은 폭력성과 싸워온 인간의 기나긴 역사를 통째로 부정한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리바이어던의 부상은 개인, 또는 집단 간의 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왔지만 그 스스로가 폭력의 주체로 돌변했을 때 개인이나 집단의 무력함을 치명적인 형태로 드러낸다. 그리고 대상이 무력할수록 폭력성의 범위와 잔혹함이 극대화된다.


당시 폭력을 자행한 계엄군 군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국가의 명령을 열심히 수행하는(비록 그 일이 수백만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일 지라도) 평범한 군인의 마음가짐이었을까? 아이히만 자신은 국가의 도구로서 도구적 역할에 한하여 성실하게 임했을 뿐 집단 학살을 자행한 주체였던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그의 죄는 복종이었고 복종은 덕목으로서 찬양된다. 그는 1962년 교수형으로 사형당했다.

(2007년 아이히만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그때 당시 아이히만 역을 맡은 배우가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토마스 크레치만이다)


아이와 여성, 노인에게 착검한 총검을 쑤셔 넣으면서 계엄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철심을 박은 곤봉으로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하면서 그들 한 명 한 명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건쉽으로 민간인들에게 기관총을 발포하고 화염방사기를 쏘던 그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들만 모아놓은 집단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로 전역한 이후 별다른 범죄행위 없이 우리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5월의 광주는 부여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잠재된 가학성을 폭발시켜야만 했던, 집단적 광기에 물들어 정권의 도구로서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한 끔찍한 기억일 것이다. 제발 그들에게 그 기억이 악몽으로라도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들 중 복종을 이유로 단죄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5월의 광주가 두려웠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책임과 복종, 집단적 감정의 폭풍에 휩쓸려 가해자가 되는 상상, 타인에 대한 폭력에 거리낌 없어지는 상상, 구조적 악에 일조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상상...


우리에게는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할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미움받는 백성, 한 많은 백성 전라도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개돼지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도망가는 사람의 등 뒤에서 착검한 총을 휘둘렀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과 머리를 주로 때렸다."


이선 씨의 증언. 한국현대사사료연구원 편,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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