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비군 Nov 26. 2020

코로나 이후의 세상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평일이면 매일 8시간 이상 머물던 사무실이 새삼 낯설다. 여기저기 서류뭉치가 쌓여있고, 플라스틱 보드에는 난잡한 숫자와 몇몇 단어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어 있다. 책상의 큰 모니터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만 일을 하다가 큰 화면을 보니 일하기 수월하다.


처음 뉴스가 나온 후 거의 1년이 지나고 있지만 코로나는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변했다. 해외여행은 불가능해졌고, 사람들은 더 긴 시간을 컴퓨터와 핸드폰을 보는데 쓴다. 회의는 줌과 위벡스로 하고, 여가시간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페이스북을 보며 보낸다. 타인을 직접 만나는 시간은 사라졌지만, 디스플레이를 통해 타인을 만나는 시간은 늘었다.


그렇게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되어 코로나로 끝나간다. 정치는 혼란해졌고, 경제는 동력을 상실했으며, 사람들은 우울해졌다.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나며, 사람들은 뉴스 하나, 글 한 줄에 격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작은 휴대폰 화면 속과 다르게 밖에 나오면 세상은 평화로워진 듯하다. 거리는 한산하고, 공기는 깨끗해졌으며, 상점은 붐비지 않는다.


오랜 재택근무로 몸은 부풀었고, 머리와 수염은 지저분해졌다. 면도를 했지만 깔끔하지 않다. 흐리고 어두운 날씨에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사무실은 절반의 인원만 근무하고 있어 조용하다.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렸다는 듯 세상이 쉬어가는 느낌이다.


여전히 세상은 돌아간다. 여전히 못된 사람과 좋은 사람들은 뒤섞여 서로 아닌 척, 혹은 모른 척 살아간다. 아이들은 여전히 정신없고 이곳저곳 에너지를 뿜어내며, 어른들은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거나, 가끔씩 즐거워하며 달라진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이 위험해지는 위기에도 세상은 평온하게 돌아간다.

1940년 독일의 런던 대공습 당시에도 폭격에 부서지고 불타는 도시에서 영국인들은 홍차를 즐겼고, 1914년 1차 세계대전 중 수십 미터를 두고 대치하던 참호 속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가 되자 함께 캐럴을 부르며 선물을 교환했다.


인간의 좋은 면은 위기 때 더 밝게 빛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전 15화 혐오 마케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