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단어와 함께
이 저널은 ‘문장 완성하기sentence stems’ 기법을 활용한다. ‘요즈음 내 마음은 ( ). 왜냐하면 ( ).’의 빈칸을 채우면 된다. 짧고 간단해서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에 대한 문장을 완성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감정은 생각이나 기억과 함께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서워도 외로워도 슬퍼도 걱정이 되어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특히 청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불편하면, 남자아이들은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많고, 여자아이들은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답답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화가 난 것 같은데, 딱히 그 감정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고 다른 감정과 구별이 잘 안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저널은 감정 단어를 활용한다. 감정 목록을 제시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된다. 감정 단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감정 단어는 유쾌한 감정 단어 36개와 불쾌한 감정 단어 36개를 활용한다. 이 72개 단어는 다양한 감정 단어들 중에서 임의로 선택한 단어들 중에서 내가 직접 만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모았다. 감정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윤리성이 없다. 나쁜 행동은 있어도 나쁜 감정은 없다고 한다. 감정을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유쾌한 감정과 불쾌한 감정으로 구분해 보았다. 이 저널 쓰기는 7~10분 정도가 걸린다. 저널을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유쾌한 감정 단어 36개와 불쾌한 감정 단어 36개를 읽으면서, 요즈음 자신의 감정에 해당하는 단어에 밑줄을 긋는다. 개수에 상관없이 있는 대로 밑줄을 긋는다.
◦밑줄 그은 단어들 중에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 3개를 선택한다.
◦‘요즈음 내 마음은 ( ).’의 ( ) 3개에 감정 단어 3개를 채워서 문장을 완성한다.
◦‘왜냐하면’ 다음을 문장 3~5개로 완성한다.
◦느낌 쓰기로 마무리한다.
다음 7개 사례는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낸 고3 학생들의 저널이다. 수험생으로서 지치고 힘든 상황에 있는지라 감정 단어 3개 모두를 부정 단어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안하다’와 ‘답답하다’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음으로 ‘실망하다’, ‘긴장되다’, ‘두렵다’, ‘부끄럽다’ 등의 단어들이 많았다.
<사례1>
요즈음 내 마음은 (불안하다). (답답하다). (두렵다). 왜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하는 것에 비해 잘 안 나와서 답답하고 수능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나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수능을 본 나의 모습이 안 좋은 모습일 것 같아서 두렵다. 지금부터 열심히 달리면 좋은 성과를 걷을 수 있을지 걱정되고, 나는 해도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채울지 불안하고 막막하다.
[느낌] 내 마음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마음 상태가 이렇구나 싶다. 마음속에 답답했던 한 구석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 것 같다.
<사례2>
요즈음 내 마음은 (부끄럽다). (불안하다). (화나다). 왜냐하면 열심히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항상 합리화하는 내가 열심히 하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 부끄럽다.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난다. 뒤쳐질까 불안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 할까봐 불안하고. 이렇게 항상 생각만 하고 막상 실천하지 않는 내가 화가 나고 행동을 하지 않고 혼자 생각 속에서만 행동하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난다.
[느낌] 매일 다짐하고 이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만 실천한다. 밤이 되면 허탈하고 후회하고, 또 내일이 되면 계속 반복해서 다짐하고, 실천하지 않고 후회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사례3>
요즈음 내 마음은 (긴장되다). (답답하다).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시험이 끝나고 끝난 게 아닌 것 같고,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이 성적으로는 대학은 못 갈 것 같고, 왜 이렇게 살았는지 후회도 되고,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는지 답답하고, 수능을 생각하면 긴장도 되고, 또 결국 이 성적으로 수능 때까지 가다가 다른 친구들 다 대학 합격해서 하고 싶은 거 할 때 나만 아무것도 못 할 거 같다. 그렇다고 재수는 염두도 안 나고, 그냥 내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하고 부끄럽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느낌] 요즘 그냥 많이 비관적이고 우울해한다는 건 알았는데 저렇게 심하게 비관적일 줄은 몰라서 좀 놀라기도 했고, 그냥 요즘 내 마음을 저렇게 글로 다 써보니까 후련하다. 항상 같은 생각만 반복하면서 나아지지 않는 나 자신 때문에 더 답답해지는 것 같다. 작은 변화라도 필요한 때이다.
<사례4>
요즈음 내 마음은 (불안하다). (답답하다). (부끄럽다). 왜냐하면 1, 2학년 때는 성적이 안 나와도 그 순간 점수에 실망하고 화가 났었는데 3학년이 되니 공부를 했건 안했건 간에 내 점수를 보면 ‘과연 내가 앞으로는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조금만 더 열심히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 볼 걸.‘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꿈만 많았지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다.
[느낌] 항상 힘든 걸 다 숨기고 긍정적인 생각들로만 나를 세뇌시키려 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는 많은 얘기를 해도 친구들도 힘들고 지쳐있는 걸 알기에 모든 걸 털어놓지는 못했다. 이걸 쓰면서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걸 느끼고 울컥하였다.
위 저널들을 통해 고3 수험생들의 힘든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저널 쓰기를 통해 <사례1>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었고, 답답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사례2> 아이는 다짐만을 반복하며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인 양 바라보게 되었다. <사례3>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쓰면서 깨달았다. 쓰는 것만으로 후련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자신에 대한 답답함과 동시에 변화할 때임을 각성하기도 하였다. <사례4> 아이는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마음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위 사례와 달리 유쾌한 감정 단어로 마음을 표현한 경우도 있다. 유쾌한 감정 단어 중에는 ‘설레다’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감사하다’, ‘담담하다’, ‘즐겁다’ 등이 많았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시간들이 잘 지나고 나면 행복한 미래가 올 거라는 기대감으로 ‘설레다’는 감정을 경험하였고, 가족과 친구 등 주변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감사하다’는 감정을 경험하였다.
<사례5>
요즈음 나의 마음은 (긴장되다). (서운하다). (설레다). 왜냐하면 수능 후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봐 긴장된다. 나는 새벽 6:30부터 등교하여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부모님이 그것을 알아주시지 않아서 서운하다. 대학 입시의 끝이 어디이든 학교를 졸업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테니까 설렌다. 사실 지금 멍하기도 하고 썰렁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남은 시간 후회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느낌] 지금의 감정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니 내 생활이 꽤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미래를 꿈꾸며 지루함 가운데서도 힘이 날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다.
<사례6>
요즈음 나의 마음은 (쓸쓸하다). (답답하다). (감사하다). 왜냐하면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게 마음 한 구석이 무겁고 친구들과 같이 웃으며 놀아도 마음이 쓸쓸하고 불안하다. 혼자 공부하면서 몇 개월 후에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할 결과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집중이 안 될 때도 짜증난다. 하지만 옆에서 힘을 주는 가족,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 감사하다.
[느낌] 요즘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어서 기쁘다가 우울했다가 기분이 오락가락했는데 이런 감정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깨달으니 힘이 난다.
<사례7>
요즈음 나의 마음은 (답답하다). (설레다). (담담하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맞게 가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진전 없이 제자리인 것이면 어떡하나 하는 답답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과를 알 수 없는 이 레이스에 흥분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 끝을 보기 전까지 담담하게 걸어가는 중인 것 같다.
[느낌] 이 글을 쓰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내려다 본 것 같다. 그렇게 마주한 나의 모습은 답답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담담하다. 지치고 힘들지만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나를 격려해주고도 싶고 그렇게 하는 김에, 힘들었던 김에 이루어야하지 않을까? 더 격려를 많이 해주고 싶다.
<사례5> 아이는 수능 후 결과 때문에 긴장되고 부모님에게 서운함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설레는 마음 또한 함께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사례6> 아이는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았고, 감사의 마음을 통해 힘을 얻었다. <사례7> 아이는 객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조망하면서 살펴보고 따뜻한 격려로 마음을 다독였다.
아이들은 ‘마음문장 완성하기’ 저널을 쓰면서 거울 속 자신을 보듯 마음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불안한지 우울한지 분노를 느끼는지 답답함을 느끼는지를 알아차렸다. 이런 감정들이 마음에 있다고 해서 자신이 불안이고 우울이고 분노이고 답답함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나자신을 자각할 수 있다. ‘나’는 이 감정들을 바라보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감정을 품고 있는 자기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문장 완성하기’ 저널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이 왜 그런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감정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늘 부정적 감정 속에 가둬두고 거기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널을 쓰다 보면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향해 몸을 돌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저널이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한다. 이 질문으로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이 질문은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말로서 심리적으로 위급한 사람을 예상치 않게 구할 수 있다. 요즈음 마음이 어떠냐고 묻는 데에서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공감이 시작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 간단한 저널로 스스로에게 요즈음 마음이 어떠냐고 자주 물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을 살리는 공감의 창문을 자주 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