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부-1. 마음 가나다 2)

2) 쓰면서 무엇을 경험할까?

by 이명희

<마음 가나다>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빨리 쓰도록 해야 한다. 저널을 쓰는 시간을 7분 정도로 제한을 주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한 행을 30초 정도에 써야 14행을 7분에 쓸 수 있다. 30초는 글을 잘 쓰기 위해 고민하기에 짧은 시간이다. 7분 안에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지면, 14음절에 맞춰 떠오르는 대로 펜이 생각을 앞서는 듯 쓸 수 있다. 자기검열이 멈추고 누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 하듯 쓰게 된다.


이렇게 시간 제한을 두어도 2~3분만에 완성하고 펜을 놓는 아이가 있고, 10분이 지나도록 펜을 놓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처음에는 7분 안에 쓰라고 하지만 더 쓰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몇 분 더 기다려 주어도 된다. 10분이 지나도 완성을 못하면 그만 써도 괜찮다고 마무리하고 느낌을 쓰게 한다.


아이들이 <마음 가나다>를 쓰면서 경험하는 효과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자기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앞장에서 다룬 여러 가지 마음 저널들과 같은 효과이다.

다만 좀더 빠른 시간 안에 주어진 글자에 맞춰 14행을 완성하다보면, 자기 마음을 필터에 거르지 않고 쏟아내게 된다.


<사례1>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가 않아.

나를 보며 헛웃음을 지으며

다들 뒤에서 조롱하고 있었던 것 같아.

라면처럼 짜고 맵고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

마른 땅을 밟고 푸른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어.

아,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을까?

자신에게 기대 못하는 날들이야.

차라리 귀를 닫고 모른 척할 걸. 그랬다면 날

카로운 그 말도 듣지 않았을 텐데... 괜찮

타고 다독이며 더 의연했을 텐데

파블로프 개의 침처럼 눈물부터 나왔어.

하늘은 오늘도 푸르구나.


<사례1>은 누군가의 비판으로 아픈 마음을 표현했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말로 힘들어 하고 있다. 아이들은 저널을 쓰면서 요즈음 마음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차린다. 무엇 때문에 이런 마음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다음 느낌에서처럼 자기 마음을 저널로 표현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 되는 대로 아무렇게 쓴 것 같은데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마음이 글 속에 담겨진다.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평소 고민을 시로 써보니 후련하고 개운하다. 무의식이 줄줄 흘러나와 시를 만들어냈다.

▪가~하로 시작하는 말들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실이 신기하다. 불안한 마음을 모른 척 놔두는 것보다 이렇게 들여다보니 좀 편해진다. 마음이 있는 그대로 나온 것 같아 홀가분하다.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속마음을 들춰보니 생각보다 고민이 깊었다, 이렇게 내 마음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둘째,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저널을 쓰면서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진단하고 어느 정도 치유하는 작업을 스스로 할 수 있다.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을 만나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차분해진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떠오른다. ‘가’에서 ‘하’로 가는 짧은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성장을 경험한다.


<사례2>

가장 고민이 드는 것은

나는 무엇을 잘 하는가?이다.

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요즘 들어 ‘오해였다’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대답했던 때가 언제인지

바락바락 우기는 나의 진로는

사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내가 어리다고 하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 그거에 맞는 진로를

차차 찾아가기에는 늦었다고 생각되는 이 시기에는

카메라 속 내 얼굴도 마음에 안 든다.

타인과 나를 비교할 때마다

파랗게 마음에 멍이 든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성장하는 과정이구나.


<사례3>

가는 대로 가는 게 사람 인생이라는데

나는 내 갈 길 하나 잡는 게 힘들다

다들 하고 싶은 게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정작 하

라고 하는 것들만 열심히 하는 것 같아 혼자 있을 때에는 .

마음이 괴롭다. 나도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사랑하며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아직 어려서 늦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지만

자려고 할 때마다 내가 오늘 한 일이 정말 내가 사랑해서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잠깐 모든 걸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보고 싶지만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속도만큼 학창시절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타이머를 맞춰 놓은 듯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쁜 하루

파란 하늘 한 번 느긋하게 보지 못한 오늘

하루에 쫒기며 오늘도 지나가는구나. 그치만 곧 사랑하는 일을 찾을 기회가 오겠지?


<사례2>와 <사례3>은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무엇을 잘하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기도 잘 몰라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사례2>는 자신의 고민을 성장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사례3>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다음 느낌에서도 이런 경험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울적했다. 시를 쓰면서 짐을 조금 덜어낸 것 같다.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걸어가고 싶다.

▪생각해내기 힘들 줄 알았는데 막힘없이 써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 내 고민이 정리되고 다짐도 하게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요즘 내 마음의 상태를 깨달았다. 조금 지쳐있는 마음을 위해 응원해 주는 말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가 되었다. 다시 힘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전보다 여유로움을 가지고 시작하고 싶다.


셋째, 시(詩)를 완성하는 창작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많은 아이들이 가나다시를 쓰기 전에는 부담스러워 하지만, 쓰면서 재미를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평소 글쓰기를 두려워하던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며 만족한다. 14행으로 완성된 저널을 보며 자신의 창의성에 스스로 감탄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까지 생긴다. 다음 느낌에서 만나는 경험들은 아이들에게 우울, 낙담, 불안 등의 불편한 감정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글쓰기에 정말 소질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가나다 시를 쓰다니! 나름대로 글을 잘 쓴 것 같아 뿌듯하다.

▪나는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힘들어 한다. 막상 써보니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내가 어떻게 시를 쓰나? 하고 생각했다.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다. 그런데 신기하다. 시 쓰는 게 힘들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다.

▪나는 진짜 글을 못 쓴다. 소질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완성했다. 이런 시를 쓴 것은 처음이다. 나름 잘 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아이디어가 말리는 부분 없이 수월하게 썼다. 색다른 경험이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막상 펜을 들고 ‘가’를 완성하고 나니 ‘하’까지 막힘없이 줄줄 써졌다. 나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것 같다. 마음을 카세트에 비유하니 시가 술술 잘 써졌다. 나를 칭찬하고 싶다.

▪쓰기 전에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쓰고 보니 은근 재미있다. 생각보다 잘 쓴 것 같다. 기분 좋다.

▪이 글자들로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바로바로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가니 글이 술술 나왔다.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가 써지는 느낌이 든다. 내 마음이 진솔하게 담아져서 흐뭇하다.


<마음 가나다>를 처음 아이들에게 쓰게 한 것은 2009년이었다. 수능을 두 달 정도 앞둔 고3 남학생에게 시도해 본 저널테라피였다. 국어교사로 있을 때, 고3 수업 중 이 저널 쓰기를 제안하면서 온갖 생각을 했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쓸까? 수업조차 힘들어 멍 때리고 있는 아이들이 과연 글을 쓸까? 자기 마음을 털어낼 수 있을까? 수능을 앞두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 아닐까? 등등으로 수없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가~하로 시작하는 글이니 자기 마음이 어떤지 한번 써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저널지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써내려갔다. 밀폐된 방에서 창문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자기 마음을 열어 젖혔다. 아이들의 펜 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아!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쏟아내고 싶었구나!


<사례4>과 <사례5>는 그때 쓴 <마음 가나다>이다.


<사례4>

가슴이 두근거려. 두려워 미칠 것 같아.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해. 어제도 말이야.

라면을 먹는데 또 그러더라고.

마치 수 천 수 만 명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바람만 스쳐 지나가도 터질 것 같아.

사람들은 이게 당연한 거래. 수능이 앞에 있으니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자신을 돌아볼 땐 별 것 아닐 거래. 하지만 지금은

차갑게 가슴을 억누르려 해도 수많은

카메라가 나에게 놓인 것처럼

타악기 두드리듯 두근거리는 이 가슴을 어찌 할 수가 없어. 막을 방법을

파악할 수가 없어. 아마 파악

하는 건 불가능한 거 같아.


<사례5>

가느다란 거미줄에 걸린

나비같이 흔들린다.

다리가 부러질 듯 간신히 버티는

라멘(rahmen)처럼

마음은 늘 무겁다 다가오는 그 날에 대한 불안감

바보처럼 정체된 이 불안

사소한 것에도 칼날이 되지만

아직 나에겐 희망이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 보자

차가운 시선 무시하고

카악 퉤 침 뱉어 주고

타조처럼 끝까지 달려

파란 하늘에 닿겠어

하늘을 당당하게 우러러 볼 수 있기를!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인지라 <사례4>와 같이 ‘가’에서 ‘하’까지 모두 불편한 마음을 담은 저널이 상당수 있었다. 후회, 자책, 짜증, 우울, 불안, 좌절, 한탄 등으로 수능을 앞둔 심리적 어려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0여 명의 저널 중 80% 정도는 <사례5>처럼 14행 안에서 ‘요즈음 내 마음 → 소망 → 다짐’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표현한 후에는 자기를 격려하게 된다. 자신의 소망을 상기하고 의지를 다짐하며 마무리하였다. 지금 비록 힘들지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인식하여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건강한 의지를 스스로 발휘하였다. <사례4>도 <사례5>도 아이들에게 치유의 경험이 되었으리라.


이 믿음으로 지금까지 저널테라피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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