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의 상한 마음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김준태 시인의 ‘참깨를 털며’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우리의 상한 마음도 무수한 참깨 알맹이들처럼 솨아솨아 털어진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참깨를 털려고 참깨 묶음을 내리치는 작업처럼 <상한 마음 털기>를 해보았다. 마음이 상했던 경험을 떠올리고 그냥 내리쳐 보는 것이다.
<상한 마음 털기>는 ‘5분간 전력질주Five-Minute Sprint’ 기법을 활용한다. 누구나 쉽게 낼 수 있는 5분을 활용하여 저널을 쓰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마음이 심란할 때, 시간이 별로 없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뭔가 명확하게 집중할 필요가 있을 때,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 등에 유용한 기법이다. 이 기법을 활용하는 방법은 주제를 하나 정해서 가능한 빨리 쓰는 것이다. 5분이 경과하면 멈추고 방금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 상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중 가장 ‘상한 마음’에 대해 쉬지 말고 5분 동안 쓴다.
◦5분이 지나면 멈추고, 자신의 저널을 읽어 본다.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상한 마음을 마주하기 불편하지만 그 마음을 찾아 털어내는 게 좋다. 마음 상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감정도 무뎌지기 마련인데 굳이 기억을 헤집어 놓아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불편했던 기억은 부정적 감정과 함께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곤 한다. <사례1>과 <사례2>처럼.
<사례1>
예전 친구들과의 큰 다툼으로 성격이 소심해졌다. 그 후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 받고, 나 혼자 오해하고, 부풀려서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말 장난에도 쉽게 상처받아 장난을 함부로 칠 수 없는 재미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답답하다.
<사례2>
어렸을 때 물을 쏟았는데 엄마에게 너무 큰 소리로 혼났다. 너는 왜 조심하지 않냐며 계속 혼냈던 것이 상처가 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최근까지도 물이나 무언가를 쏟으면 먼저 치우기보다 멍 때리게 된다.
<사례1>의 아이는 친구들과 다투고 성격이 변해 버렸다. 위축되고 소심해졌다. 쉽게 상처 받고, 오해하고, 과장된 생각을 하는 자기를 언어로 표현했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재미있게 지내고 싶은데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다투게 될까봐 두려워 조심하고 있다. 이런 자신이 답답하다. 청소년기는 자기 마음을 잘 인식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시기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이런 자신에 대해 <사례1>의 아이는 알고 있다. 상처가 어떻게 자기를 변하게 했는지를.
<사례2>의 아이는 어렸을 때 엄마와의 기억을 털어 놓았다. 실수로 물을 쏟고 놀란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소리는 너무 큰 소리였다. 왜 조심하지 않냐며 계속 혼내는 엄마의 말은 상처가 되었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사소한 사건일 수 있다. 그 사건의 상처가 지금까지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아이는 지금도 무언가를 쏟으면 다시 엄마에게 혼나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얼어붙곤 했다. 이런 상처를 언어로 털어냈다. 엄마에게 한번도 표현하지 못한 상처를 짧은 저널로 썼다. 글로 쓰는 데는 1, 2분 정도였다. 아이가 이 경험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해 보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이해했으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례3>
중1 때 영어선생님께 모르는 문제를 여쭤 보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여쭤 봤을 때 ‘너 참 사람 질리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이고 아직까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안경 쓴 아줌마가 싫다.
<사례3>을 읽으니 나의 중3 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영어수업 중 교실에서 쫒겨난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내 행동을 오해해서 부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억울했다. 영어 선생님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후 선생님처럼 주걱턱 남자를 보면 무조건 싫었다.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중3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니 상한 마음을 털어낼 기회가 있었더라면, 대학생 때 나를 좋아하던 동아리 선배가 주걱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몰차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걱턱 남자를 싫어 했던 나의 경우처럼 상한 마음의 기억이 엉뚱한 사람에게 날아드는 화살이 될 수 있다. <사례3>의 아이가 안경 쓴 아줌마를 싫어 하는 것처럼. <사례3>의 아이는 영어선생님 말에 상처를 받았으면서 높임말을 쓰고 있어서 기특했다.
<상한 마음 털기>는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지 않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 누군가 볼 거라 생각하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어렵다. 비공개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실린 저널들은 공개 동의를 받은 글들이다. 익명이라 할지라도 용기를 내어준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귀한 저널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 상처를 품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상한 마음 털기>에서 가장 많이 털어놓은 마음은 또래관계에서 상한 마음이었다. 다음이 가족관계에서이다. 또래관계과 가족관계에서 어떤 마음을 털어놓았는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