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담스의 3C 효과
청소년기는 이성적 뇌보다는 정서적 뇌에 더 의존하는 시기인지라 마음이 상하고 나면 그 기억이 오래 간다. 상한 마음을 털어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정적 감정의 나무를 키우게 된다. 페니베이커 박사는 감정을 돌에 비유했다. 돌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 돌을 피해서 가면 되는데, 돌을 인지하지 못하면 돌에 걸려 넘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면 감정은 우리를 종처럼 다루게 된다. 감정에 휩쓸려서 후회할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그렇다고 감정을 적군처럼 다루면서 억제하거나 억압하려고 하면, 감정은 그 에너지를 모아 한꺼번에 폭발하고 만다. 그래서 안전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내지 않는 편지> 저널도 앞장에서 다룬 <상한 마음 털기>처럼 쓰기를 통해 감정을 털어내도록 돕는다. 차이가 있다면 <보내지 않는 편지>는 대상에게 말을 거는 대화체 저널이다. 하지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보내지 않는 편지라서 안전하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요즈음 마음이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하고 싶은 말을 5분 동안 쓴다.
◦5분이 지나면 멈추고, 자신의 저널을 읽어 본다.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아담스는 ‘보내지 않는 편지’ 기법을 깊은 내적 정서 표현에 훌륭한 수단이라고 했다. 보내지 않는 편지이기에 억눌린 정서를 안전하게 표출할 수 있는 도구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염려 없이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내면에 쌓여있는 감정을 쏟아내어 정화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아담스는 ‘보내지 않는 편지’에 3C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카타르시스Catharsis이다. 고통스런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억눌러 두었던 불편한 감정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둘째는 완성Completion이다. 미완성인 관계를 완성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보내지 않을 작정이지만 상대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상대가 떠나보낼 사람인지, 화해를 청해야 할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그 관계를 완성할 수 있다.
셋째는 명확성Clarity이다. ‘보내지 않는 편지’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보다 깊고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사례 1>
○○야! 어떻게 대놓고 날 맘에 들지 않는다며 지적할 수 있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난 말 옮긴 적 없어. 니가 오해한 거야. 내 말도 들어 봐야지. 근데 너는 나에게 ‘그래 넌 원래 그렇지 뭐’라고 말하고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어. 그 이후로 나를 없는 사람인 양 여기기 시작했지. 내 친구들이 나와 함께 있는 꼴도 보기 싫어 했어. 나는 너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눈치를 봤어. 내 친구들이 하나둘 나를 떠나 너에게 가려고 할 때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엄청난 과잉반응을 보였지. 결국 친구들이 떠나고 나는 지금 혼자야. 매일매일이 슬펐고 미칠 것 같았어. 너에 대한 원망도 이젠 지겨워. 지금은 혼자가 편해. 하지만 친구를 사귄다면 너 같은 친구는 만나고 싶지 않아.
[느낌]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이 상한 줄은 몰랐다. 보내지 않는 편지이긴 하지만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하니 시원해졌다.
<사례 2>
○○아! 안녕. 우리 중학교 때 참 친했는데... 내가 고1때 이사 오니 동네도 달라지고 학교도 달라지면서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한 달 전 쯤인가? 니가 나한테 전화했잖아. 내가 전화 안 받고 연락을 안 했잖아. 니가 나더러 왜 연락 씹냐고 그랬잖아. 사실 작년에 널 아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너와 대화하면서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어. 그냥 무언가 생각이 서로 달라진 느낌? 그 후로 널 피했던 것 같아. 너를 생각하면 어색하고 마음이 무거웠어. 너는 중학교 2년 동안 내가 부를 때 언제나 나와 주고 나 도와줬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 생각 하니까 너한테 진짜 미안해진다. 니가 정말 나한테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 나 안 잊고 연락해줘서 고마워. 나중에 꼭 만나자! 잘 지내!
[느낌] 나에게 고맙고 소중한 사람을 되찾은 느낌이다. 내가 어리석게도 그 친구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 같다. 요즘 그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조만간 꼭 만나야겠다.
<사례1>, <사례2>는 친구를 대상으로 한 편지이다. <사례1>은 한 친구의 오해로 다른 친구들까지 떠나 버리고 외로움을 겪는 아이의 저널이다. <사례2>는 한때 친했지만 관계가 부담스러워진 아이의 저널이다. 두 사례 모두 아담스가 말한 3C 효과가 드러난다.
<사례1> 아이는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상한 줄 비로소 알게 되는 ‘명확성Clarity’을 경험한다. 이런 친구는 만나고 싶지 않다며 관계를 정리할 힘이 생김으로써 ‘완성Completion’의 효과도 나타난다. 이렇게 억울함을 토해 내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카타르시스Catharsis’도 느끼게 된다. <사례2> 아이는 과거의 우정을 떠올리고 친구관계를 회복하게 되며 3C 효과를 경험한다.
<사례 3>
엄마! 엄마한테 자주 마음이 상해. 그냥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엄마와 얘기를 할 때면 아무 대답도, 반박도 못해 그저 듣고만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마구마구 아파. 마음 속에서만 맴도는 말을 소리 내어 할 수가 없어. 어렸을 때부터 반박이나 내 의견을 말한 적이 없어. ‘어차피 말 해 봤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런지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 이런 나를 보면서 엄마는 속이 터진다며 악을 쓰는데... 왜 엄마가 속이 터져? 할 말 다 하는 엄마가 왜 속이 터지냐고? 이젠 엄마가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내가 얼마나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눈물만 나와. 나도 위로 받고 싶어. 엄마한테.
[느낌] 나는 엄마와 화해하고 싶었구나. 미워하기보다는 위로 받고 싶었구나. 그런데 그동안 용기가 나지 않았구나. 진짜 내 마음이 무언지 알았다. 편지에 쓴 내용을 말로 해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이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사례3>은 엄마에게 마음이 상한 아이의 저널이다.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자신은 엄마에게 위로 받고 싶다는 걸 깨닫는다. 진짜 내 마음이 무언지 알아차리는 ‘명확성Clarity’을 경험한다. 이 편지를 씀으로써 엄마는 자신이 미워할 사람이기보다 화해를 청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완성Completion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내지 않는 편지>는 불편한 마음에 접근하도록 도와 준다. 이 저널은 편지를 보내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억압된 감정을 찾아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상실에 대한 슬픔, 피해자로서의 분노나 억울함 등을 표현함으로써 그 감정들을 마주 대하고 떠나보낼 수 있도록 한다. 여전히 그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우에라도 이 감정에 대한 대처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수용전념치료에서처럼 감정은 수용하고 현재 삶에 전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저히 말로는 할 수 없어서 입이 안 떨어져서 묻어두었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이 <보내지 않는 편지> 저널로 카타르시스Catharsis, 완성Completion, 명확성Clarity의 3C 효과를 경험하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는 저널을 쓰긴 했어도 현실에서는 편지를 보내지 못할 상황이라 더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어떤 아이는 묻어 두었던 감정을 끄집어내니 그때 상황이 떠올라 울화가 치민다고도 한다. 어떤 아이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상처를 괜히 건드려서 아프다고 한다.
상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다시 쑤셔 넣었을 경우 마음은 정돈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억압된 감정을 마음 속 깊고 어두운 곳에 처박아 두고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그 감정들이 무의식에서 우리를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 저널을 쓴 후 불편한 감정이 지속될 경우에는 이 저널을 바탕으로 한 상담을 권유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