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A에게 메일을 보내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이니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4막 3장에 나오는 대사이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이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는 셰익스피어의 표현에 감탄한다. 불편한 감정은 이름을 붙여 알아주고 떠나보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을 건드려서 끄집어 놓으면, 괜히 상처가 덧날까봐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억압된 감정은 자기도 모르게 삐져나온다. ‘자기도 모르게’가 문제이다.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대책 없이 날뛰는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보내지 않는 편지>는 불편한 감정에 언어를 주어 떠나보내는 저널이다. 이 저널을 쓸 때,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아이들이 있다.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는 긍정적 태도로 그럴 수 있다. 불편한 기억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심리기제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목록을 제시하면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수 있는지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람에게 할 말을 다 못한 적 있나?’하고 잠시 생각한다.
◦1~7번을 읽으며 떠오르는 한 사람을 A라 한다. 1~7번 외의 경우를 떠올려도 된다.
1. 나와 관계가 멀어진 사람
2. 친한 척하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
3. 과거에 나쁜 기억을 갖게 된 사람
4. 나를 화나게 한(하는) 사람
5. 나를 실망하게 한(하는) 사람
6. 나를 억울하게 한(하는) 사람
7. 나를 힘들게 한(하는) 사람
8. ( 그 외 어떤 ) 사람
◦그 사람 A에게 메일을 쓰듯 하고 싶은 말을 5분 동안 쓴다.
◦5분이 지나면 멈추고, 메일을 A에게 보낸다고 상상한다.
◦메일을 보낸 느낌을 정리한다.
앞장에서 소개한 <보내지 않는 편지> 저널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실제 메일을 발송한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메일을 보낸다고 상상하면 ‘보내지 않는 편지’ 기법에 대한 3C 효과 중 특히 완성Completion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아담스는 ‘보내지 않는 편지’ 저널이 미완성인 관계를 완성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보내지 않는 편지이지만 이 저널을 씀으로써 상대가 떠나보낼 사람인지, 화해를 청해야 할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그 관계를 완성할 수 있다.
<사례 1>
나를 억울하게 한 A에게
A씨, A씨가 저에게 실망했다면서 꾸짖으셨는데 저에게도 사정이 있었어요. 물론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 애의 행동이 더 나쁜 건데, A씨께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저만 나쁜 애가 된 것 마냥 취급받았을 때 정말 억울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생각해보면 억울합니다. 지금이라도 왜 그랬는지 다 설명하고 싶지만 너무 늦었네요. 하지만 저는 그때 정말 억울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느낌] 정말 A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사정을 그때 말해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써보니 직접 말해 보고 싶다. A씨는 기억이나 하려나. 어쩌면 A씨는 기억도 못 할 일을 나만 가슴에 담고 있었나? 허탈하네. 아무튼 이렇게라도 말하니 좀 괜찮은 것 같다.
<사례 2>
나를 힘들게 하는 A에게
정말 하기 싫은데 안 하면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는 것 같이 교묘하게 협박해서 결국 꼭 그 일을 하게 만드는 A가 정말 짜증나고 아니꼽다. 그러면서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라면서 변명을 하는 것이 위선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싫다. 정말 나를 위해서라면 내 스트레스를 돋우는 것들을 좀 그만했으면 좋겠고 나를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나를 믿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한테만 그런 명목으로 몰아세우니까 정말 싫다.
[느낌]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는데 직접 표현하니까 한결 낫고 시원한 것 같다. 말로 하면 내가 말발에서 말릴 게 뻔하고 질 것 같아서 참아왔다. 이 저널으로 쌓여있던 걸 풀어내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았다.
<사례 1>은 교사에게, <사례 2>는 부모에게 쓴 저널인 듯하다. 하고 싶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이 저널로 풀어냈다. <사례 1>, 상대는 기억도 못할 일을 끙긍댄 건가 하는 생각에 허탈한 느낌이 든다. 별거 아닌 걸 끌어안고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되고 억울함도 좀 나아진다. <사례 2>, 부모의 사랑도 믿음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아이의 답답함이 담겨있다. 저널로 쓰고 나니 스트레스가 풀린다.
<사례 3>
나를 실망하게 한 A에게
A야, 너랑 나 몇 년 지기 친구지? 아마 2년은 훌쩍 넘었을 거야. 우리가 함께 한 시간보다는 우리의 우정이 그렇게 돈독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 나는 네가 너무 좋아서 너랑 노는 게 재미있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 근데 네가 다른 친구에게 나랑 같이 있으면 심심하다고 말하고 그걸 그 친구를 통해 듣는 순간 나만 너를 좋아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아.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하던 네가 어느 순간부터 내 말을 무시하고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라고. 솔직히 그때 알아차렸지만 네가 좋아서 언젠간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잘해줬는데 끝까지 너는 안 변하더라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그러니까 너무 상처를 받았는데 너에게 말하면 그게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말을 안했는데 그때 말할걸 그랬나봐.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친해서 다행이야. 중학교 때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다.
[느낌] 마음속에 묵혀뒀던 얘기를 해서 속 시원하다. 친구에게 말할 용기가 생겼다.
<사례 4>
나를 억울하게 한 A에게
A야, 우리 중학교 때 슬리퍼 때 가지고 싸웠던 것 기억나니? 솔직히 맨날 장난은 네가 먼저 시작하고 그랬는데 네 슬리퍼 숨겨놨다고 화 내더니 전화로 미안하다고도 했는데 얼굴 보고 미안하다고 안 했다고 그렇게 쌩깠잖아. 내가 그때 미안하다고 손편지도 써줬는데 읽씹하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억울해. 물론 나도 잘못은 했지만 너도 내 슬리퍼 가지고 숨겼을 땐 아무 말 안했잖아. 이게 난 정말 아직도 억울해. 하필 고등학교도 같아서 처음엔 놀랐는데 같은 반 한 번도 안했지만 나중에 같은 반 되면 화해하자.
[느낌] 계속 마음속에 A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쓰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말처럼 다시 그때처럼 친해지긴 힘들겠지만 서로 나쁜 감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례 5>
나와 관계가 멀어진 A에게
중학교 2학년 때 만나서 고1때까지 가장 친하고 가장 편한 사람이 너였는데 문자 2통으로 우리 연락은 끊어졌지. 그 문자하고 학원에서 용기 있게 말 걸었어야 했는데 정말 1000번을 말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결국 못 했어. 너도 그랬을까. 3년 동안 투다 대고 시시덕거렸던 시간이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무너져서 정말 아쉽다. 그런데 우리가 아주 친했던 만큼 지금 다가가기 더 힘든 것 같아. 그래도 꼭 화해하고 싶다.
[느낌] 답장이 어떻게 올지 계속 두려워지고 화해를 해서 만나면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 두렵다. 그래도 화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라도 쓰니 후련하다.
<사례 3>, <사례 4>, <사례 5>의 아이들은 저널을 씀으로 화해하고 싶은 마음을 만나게 된다. 사소한 오해와 화해를 청하지 못한 망설임을 정리하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사례 6>
나를 힘들게 한 A에게
A야, 넌 정말 짜증나. 그냥 네 생각만 하면 힘이 쭉 빠지고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는 것밖에. 널 생각하면 자존심도 상하고 짜증나. 그래서 생각 안 해야지 하고 있다가 너의 얼굴만 보면 다시 생각나. 그래도 마냥 기분 나빠 할 순 없어서 내가 합리화를 하면서 참아보고 있어. 이런 감정들이 날 너무 힘들고 지치게 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아무 감정이 없을 수도 있지만 네가 한 행동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꼭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이젠 잊어볼라고 노력할게. 안녕.
[느낌] 앞에선 절대 하지 못하는 말들을 이렇게 쓰니까 정말 속이 뻥 뚫린 느낌이다. 시원하다.
<사례 7>
과거에 나쁜 기억을 갖게 한 A에게
너는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5, 6학년 때였어. 그때부터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가 되었지. 기억도 안 나겠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어. 니가 사과를 했지. 나는 받아줬지. 그렇지만 아직도 문득 그날 생각이 나. 너는 기억도 안 나는 그 일이 나는 아직도 너무 생생해. 내가 너에게 보이는 행동에 넌 불만이 진짜 많겠지만,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무서움보단 크지 않겠지. 마지막으로, 네가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 나에게 하는 그런 말, 행동, 태도를 떳떳하게 보진 못할 거야. 제발 후회했으면 좋겠어.
[느낌] 무섭다. 다신 생각하기 싫지만 볼 때마다 생각난다.
<사례 7>과 <사례 8>은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운 대상에게 쓴 저널이다. 이 아이들은 개인상담으로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한 감정을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수용하지 못한 채 다시 묻어두게 되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 상한 마음은 자신을 먼저 상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한다. 상한 마음은 왜곡된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므로 그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고 다시 상처를 주고받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이 저널은 보내지 않는 편지 기법인데, 이 저널을 쓰는 아이들은 실제로 메일을 보낸 것처럼 느꼈다. 시원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하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저널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페니베이커 박사 연구에서 심리적 외상의 기억에 관해 글쓰기를 하고 난 후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함을 느낀다는 결과들과 유사했다. 손글씨로 써내려간 저널이 마음 속 돌멩이를 퍼내는 작업이 되었다.
여러분도 혹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를 한번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