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아빠!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사례1>
중학교 3학년 때, 엄마의 잔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그 날도 엄마의 잔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책 치워라, 옷을 세탁기에 넣어라. 이 두 가지가 명령문이였다. 해서 나는 책을 먼저 치우고 옷을 치우려 했는데 엄마는 다리 아프게 왜 그리 왔다갔다 하냐. 융통성이 없다며 혼냈다. 혼이 난 이유를 모르는 나는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나에게 융통성이 없단 소리를 자주한다.
청소년기는 부모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기이다. 부모와 거리두기를 하려는 자녀와 이런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서로 마음 상하는 일들이 생긴다. <사례1> 아이처럼 사소한 일로도 갈등이 생긴다. 이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청소년들은 심리적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독립적 욕구가 강한 청소년기라서 가정은 안전지대로서 중요성이 더욱 크다. 가정에서 자신을 믿고 존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청소년들은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사례1> 아이가 자신을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단정지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례1>과 같이 <상한 마음 털기> 저널에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마음 상한 내용들이 많았다. <상한 마음 털기> 저널은 A4 1/4 쪽지에 익명으로 쓴 저널들이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익명성 덕분에 아이들은 용기를 내어 상한 마음을 털어냈다.
<상한 마음 털기> 저널 중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털어놓은 짧은 저널들을 읽은 후, 이 저널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5분 정도 시간에 털어낸 이야기들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이렇게 털어냈다고 해서 상처가 바로 아물 수는 없다. 아이들은 이 상처를 끄집어 내어 바라보긴 했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마음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으리라.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상한 마음 털기> 저널들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왜 마음이 상할까?
첫째, 학업이나 진로 문제가 가장 많았다.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아이들의 학업 성취와 얽히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입시를 앞두고 있다 보니 학습 문제로 갈등이 커지고 부모자녀 관계를 어렵게 한다. 더 잘하라는 부모의 기대나 응원조차 사랑으로 느껴지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상한 마음 털기> 저널에서 인용한 다음 내용들을 보면, 아이들의 상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부모님께서 나의 건강보다 성적 챙기실 때’
‘엄마가 성적표를 보더니 공장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집에 갔는데 또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기분이 상했다.’
‘나는 공부하려고 계획도 세워놓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엄마가 너는 맨날 놀고 있다고 말해서 마음이 상했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냐고 성적이 이딴 점수냐고 소리 질렀을 때, 그때 힘든 일도 매우 많았고 난 나름 열심히, 주어진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을 보지 않는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내가 학업이나 진로에 관련된 힘든 점을 이야기하면 항상 내 괴로운 심정은 이해해주지 않고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만 지적하려 해서 마음이 상했다.’
‘아빠가 원래 말을 잘 안거는 스타일인데 꼭 술 드시고 오시거나 시험 기간일 때 거시는 말이 있다. ‘시험 언제냐?’ ‘잘 봤냐?’ 평소에는 말도 잘 안 거면서 내가 좀 짜증나는 상황일 때만 그 질문들을 하신다.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나 생각도 들고 가끔씩은 아예 말도 안하고 싶다.’
‘성적이 계속 오르는 데 엄마는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칭찬을 잘 안 해준다. 100점을 맞았거나 하나 틀렸을 때만 엄청 좋아해주고 그 외의 점수는 그냥 아쉽다고 하거나 이렇게 보면 대학 수시로 못간다고 말하셔서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믿는데, 엄마는 날 아직 못 믿는 것 같다.’
둘째, 존중 받지 못하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외롭고 불안하다.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인정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자존감이 약해진다.
<사례2>
중학생 때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차별한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더 엄마 눈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도 엄마는 동생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엄마의 심중을 떠보기 위해 슬쩍 말했다. ‘엄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 난 당연히 엄마가 그렇다고 할 줄 알았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지.’ 충격이었다.
<사례3>
동생이 무엇인가 잘못을 하거나 나쁜 말을 나에게 막 했을 때 아빠가 ‘너는 누나니까 참아’, ‘왜 너가 잘못하고서 동생한테 그래’와 같은 말들을 할 때 마음이 상했다.
<사례4>
중학생때 엄마가 했던 말.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식의 말이었다.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다.
<사례5>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을 못 먹어서 매우 배고픈 상태였는데 때마침 친구가 저녁사준다고 해서 친구랑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한테 저녁 먹고 간다고 했는데 9시에 왜 안 오냐고 해서 독서실 가는 중이라니까 거짓말 치지 말라면서 몇 시에 독서실 갔냐고 이러면서 독서실에 전화해 본다고 했는데 정말 화가 나고 실망스럽고 이렇게 믿음이 없나라는 마음에 속상했다.
<사례6>
아침에 일어났는데 너무 아파서 밥을 못 먹겠다고 엄마한테 말씀 드렸는데 ‘너 알아서해.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지. 생각이 그렇게 없니?’ 하며 내 얼굴도 안 보고 무관심하게 나를 혼내듯 한심한 말투로 말하셔서 속상하고 상처 받았다.
<사례2>, <사례3>은 형제자매 간에 차별을 당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 <사례4>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이 마음에 날카롭게 꽂혀 있다. <사례5>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사례6>은 엄마의 무심한 반응에 마음이 상한다. 부모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언행들이 아이들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 기억 속에 오래 자리잡고 있다.
셋째, 부모의 폭력이나 불화, 이혼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폭력은 주로 아버지를 통해 일어나는데, 물리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 모두 해당된다. 이러한 폭력은 아이들의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 이혼은 물론이고 불화를 겪는 부모 모습도 아이들에게 치명적 상처를 준다.
<사례7>
중학교 때 동생 앞에서 아빠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쳐진 채 주먹으로 위협 당했고, 그러다 한 번은 진짜 주먹으로 머리며 목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맞았다. 머리채가 잡힌 채 시선이 고정되었던 거실 바닥. 아픈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파묻었던 내 방 이불. 붉은 아빠의 얼굴과 억센 주먹.
<사례8>
아빠가 내가 공부를 안 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저 돼지 같은 새끼. 하면서 깍아내리고 욕하는데 싫다. 화 나면 시발년아. 소돼지도 못한 놈아 라고 소리치는 것도 싫다. 무조건 고함 치면서 강요할 때마다 싫다.
<사례9>
초등학교 몇 학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으로 수학을 20점 맞았는데 아빠가 그 점수를 보고 뺨을 때리셨다. 나는 엉엉 우는데, 아빠가 공부를 가르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도 너는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냐면서 이마를 때렸다. 이마가 붓고 안경이 부러졌다.
<사례10>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아빠가 오빠랑 나를 부르더니 엄마아빠가 따로 살게 됐다고 누구랑 살지 정하라고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라고 물어봤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상황 말투 모든 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거 같다. 엄마아빠가 상처 주려고 했던 말이 아닌 걸 알지만 내 마음에는 계속 남아 있는 것 같다.
<사례7>의 내용은 아동학대 신고를 해야할 정도로 끔찍하다.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상처를 털어내고 아이는 조금이나마 나아졌을까? <사례8>에 담긴 욕설과 비속어가 아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계속 되새겨질까봐 두렵다. <사례9>와 <사례10>은 초등학생 때 기억을 털어냈다. <사례9>는 1년 전 고1 때 기억이 초등학생 때 기억까지 불러왔을 것이다. <사례10>은 부모 관계가 깨어질 위기 상황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지금도 눈물이 날 듯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한편, 이렇게 상한 마음을 회복시킨 아이들도 있다. <사례11>은 초콜릿이라는 보상물 덕분에, <사례12>는 마음 상함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서, <사례13>은 엄마에게 직접 털어놓을 수 있어서 가능했다. 이렇게 화해의 방법은 다양하다.
<사례11>
초등학교 4학년 때, 언니랑 싸우다가 서로 때리면서 욕을 했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욕한 것만 듣고 단소로 때렸다. 언니도 똑같이 욕을 했는데 나만 때리니까 억울하고 아빠가 너무 밉고 멍이 들 정도로 아팠다. 그 후 거의 2주는 아빠랑 말도 안하다가 아빠가 비싼 초콜릿을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해주셔서 화해했다.
<사례12>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고 특출난 재능도 없지만 엄마는 항상 내 편을 들어주고 응원해주셨다. 나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구박하는 이모들이나 집안 어른들에게도 맞서서 대응해주시고, 그렇다고 공부하라고 닦달하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와 사소한 일로 싸우다가 엄마가 나에게 너 공부도 못하는데 차라리 포기하고 대학 가지마. 라고 하셨다. 엄마의 진심인가 싶어서 머리도 하얘지고 몇 초동안 머리가 얼얼했다. 석 달 동안은 엄마와 말도 안한 것 같다. 하지만 독하게 마음을 먹어서 모의고사 때 성적을 꽤 올렸다. 지금은 다시 친한 모녀지간이 되었다.
<사례13>
나는 딸 셋 중 막둥이다. 할머니도 내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 아니라서 엄마한테 뭐라고 하고 그랬다던데 엄마도 가끔 다른 사람이랑 말할 때 ‘우리 집은 딸이 셋이야, 막내가 아들로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라는 말을 가끔 했다. 엄마는 물론 농담조로 말한 거였지만 내 딴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느 날은 내가 엄마한테 울면서 ‘이미 내가 태어났는데 그런 말은 하지마’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상처를 엄마에게 말했더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엄마도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위 사례들을 거울 삼아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비춰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상한 마음을 억지로 눌러 놓지 말고 마음 상할 만했다고 다독여주면 좋겠다. 부모님들이 읽는다면, 자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담자나 교사가 읽는다면, 청소년 상담에 5분 저널 쓰기로 상담의 물코를 틀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