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여년 전에 영국 카디프에서 살 때 농산물 시장에 자주 갔다.
거기서 야채도 사고 과일도 샀다. 우리나라보다 싼 것이 감자였다.
감자도 종류가 몇종류가 있었다.10kg한 자루에 2파운드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돈으로는 3천원쯤된다.
과일은 세계각국의 온갖 과일이 다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감은 한 두 군데나 팔지 다른 곳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나라 배추도 그곳에서는 차이니즈 게베츠라고 하여 중국인과 우리나라 교포들만 찾았다.
어제 산청 남사 예담촌에 들렀다가 수령이 650년이나 된 감나무를 보았다.
30년을 한 세대라고 보면 22대 할아버지와 같은 시대에서부터 살아온 나무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후반기쯤 되겠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감나무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집 주위의 밭둑에 감나무를 심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큰 감나무에서 감이 백접을 따낼 정도로 많이 열렸다. 갯수로는 만개다.
먹을 게 없던 농촌에서는 감꽃이 필 때부터 아이들과 친했다.
감은 초복이 지나야 먹을 수 있는데 요즘처럼 단감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이 떫은 감이었다.
감도 종류가 여럿 있는데 납작한 반시도 있고 왕감, 대봉감,돌감,기암도 있다.
단감은 홍시나 곶감이 안되므로 오래 보관할 수가 없었으므로 선호하지 않았다.
감도 해걸이를 했다. 한 해가 잘 되면 다음 해는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감나무잎은 감엽차라 하여 말려서 차를 끓여 마셨다.
한여름 모내기 할 때 갈치조림을 반찬으로 나누어 줄 때 감나무 잎에다 싸서 주었다.
감이 벌레가 먹으면 발갛게 홍시가 되었다.
긴 장대로 홍시를 조심스럽게 따서 입에 넣으면 달콤한 맛이 꿀맛이나 다름없었다.
가을이 깊어 밤사이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면 감나무 잎파리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바알간 감들이 가지마다 조랑조랑 매달려 있었다.
장대끝을 칼이나 낫으로 쪼개어 감나무 가지가 끼일 수 있게 만들어 감을 딸때는 감이 달린ㄴ 가지를 꺾어내렸다.
감을 따다가 잘못하면 감이 땅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제일 높은 가지에 매달린 감을 한 두개를 까치밥이라고 남겨 두었다.
남사예담촌에 있는 650년된 감나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