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아파트 현관 앞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뭔가 들어있는
택배가 왔다. 누가 보냈는지 주소를 보니 경기도 어디라고 적혀 있는데
발신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칼로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잘라서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살펴보니
'오메기떡'이 아닌가. 경기도에 사는 처남이 내 생일이라고 선물로 보낸 모양이다.
나는 생일이니 결혼기념일이니 하는 날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집사람한테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경상도 남자로 낙인찍혀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지론은 매일을 특별한 날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생일이라고 케이크 사서 생일 축하 노래 부르면 없는 밥이 생기기라도 하나?
내 진짜 생일은 음력으로 섣달 스무 하룻 날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출생신고 하러 가려면 동네에서 면사무소까지 십리나 이십리를 걸어가야 했으므로
한 두해 늦는 것은 예사였다. 그래서 내 생일도 양력으로 10월 21일로 바뀐 것이다.
인터넷에 내 생일이 공개되어 있으니 나도 모르고 지내는데도 지인으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가 들어온다.
오메기떡도 내 가짜 생일 덕분에 맛보게 되었다.
오메기란 차조의 제주도 방언이다. 경상도에선 조를 서숙이라고 하는 데 정월 보름밥 할 때 오곡으로 좁쌀을 썼다.
제주도에선 논농사가 별로 없어 주로 밭 작물인 보리와 조가 주식이었는데 오메기는 좁쌀 중에서도 차진 것을 말한다. 오메기떡은 제주 향토음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오메기 가루로 떡을 만든 다음 팥고물을 묻힌 것이다.
제주도에서 나는 조껍데기 술도 유명한데 실제로는 조껍데기로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 알갱이를 쪄서 누룩과 함께 발효시킨 것이다. 막걸리로 빛깔도 노란 것이 맛도 괜 찮은데
벌써부터 목구멍에 침이 꼴깎 넘어간다. 조깝데기 술 한 사발 주욱 들이키고 안주로 김치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세상 시름 다 잊는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