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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by 남청도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으로 여선생님이 오셨는데 얼굴이 퉁퉁하게 생겨서

우리는 그녀를 박호순선생이라 불렀다. 순호박을 거꾸로 부른 것이다.

'호박꽃도 꽃인가?'라는 말도 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다 아름답고 예쁘지만

호박꽃은 크기도 제법 크고 사람들로부터 크게 사랑받는 편은 아니라는 말이다.


배고픈 시절 호박은 구황식량이었다. 양식이 떨어졌을 때 호박죽을 끓이거나

호박을 삶은데다 밀가루를 조금 풀어 호박풀대죽을 쑤어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았다.

호박을 잘라 말려서 호박 우거리를 만들었다가 호박 시루떡도 해 먹고

겨울 동안 시락국에 호박말랭이를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하였다.


봄에 터밭에 호박심을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준 다음에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

호박씨를 심게 해 주셨다. 당신이 심어도 될 것을 아들이 심으면 호박이 많이 열린다면서 양보를 하신 것이다.

이십여년전 영국에 잠시 거주할 때 호박씨를 가져갔다가 마당가에 심어봤는데 아예 싹이 나오지 않았다.

X레이 검사대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닐텐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호박은 줄기로 뻗어 나가면서 비가 오면 잘 자란다. 부드러운 잎파리는 떼어다가 쪄서 쌈을 싸 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미꾸라지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호박잎을 따서 대소쿠리에 문질러서 추어탕을 긇여내셨다.

애동호박은 나물로 해 먹어도 맛이 있고 초가을에 갈치조림에 애동호박을 둠벙둠벙 썰어넣고 찌져놓으면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른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맛있다.


지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하프문베이에서 제47회 세계호박무게 챔피온쉽이 열렸는데

트래비스 진저가 출품한 무게 1천65kg짜리 호박이 우승을 차지했다고 한다.

우승 상금은 화박 무게 1파운드당 7달러로 진저는 16450달러(한화188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전문 농업인은 아니고 대학에서 원예강사로 있는데 취미로 집 뒷마당에서 여가시간을 활용해

호박을 길렀는데 하루에도 물을 최대 10차례나 주고 비료도 두 차례 이상 주었다고 한다.

그는 1톤이 넘는 호박을 트레일러에 싣고 미네소타주 집에서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주까지 35시간이나 직접 운전을 해왔다고 한다. 도중에 혹시라도 호박이 다칠까봐 도로 위의 요철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미국은 땅덩어리도 크지만 무엇이든지 다 크다.


미국사람은 키도 크고 코도 크다. 우리는 어릴 때 서양인들을 코쟁이라 불렀다. 6.25사변때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들을 보고 코가 컸기 때문이었다. 흑인들은 인도쟁이라 불렀는데 참전했던 인도군의 피부가 새까맸기 때문이었다. 미국 해변에 가보면 조개도 엄청 크다. 말조개는 혀가 팔둑만 해서 먹기에 징그러울 정도다.

우리나라 호박은 크다고 해도 1톤과는 거리가 멀다. 예전에 큰 호박이나 고구마를 진주 개천 예술제때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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