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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다

by 남청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법어다.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고 하는 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아는 말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무게가 달라지고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어제 신문기사에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행위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미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그 바람에 흑인들의 약탈로 애먼 한국 이민자들의 상점이 털려 피해가 엄청나다고 한다. 개중에는 한국 여성과 노인이 폭행까지 당했다고 한다.

화풀이를 아무런 힘도 없는 한국인들에게 하는 것이다. LA폭행 때도 그랬다.

보스턴에서는 시위대가 공원에 서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 목을 베어 인근 땅바닥에 던져 버렸고

또 다른 곳에서는 동상을 끌어내려 바닥에 엎어 놓고 발길 질을 해대는 사진도 실렸다.

그들은 콜럼버스가 원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을 원주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인가? 엎지른 물은 도로 쓸어 담을 수는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말이 있다.

반듯한 바닥 위에 날계란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금년 4월 10일 말레이시아에서 무함마드 아벨 하이드 무함마드 무크 벨(남, 20세, 쿠알라룸푸르 거주)이 계란 3개를 수직으로 쌓는 기록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6세 때부터 계란 쌓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여 기네스북의 계란 쌓기에 도전하여 성공한 것이다. 요령은 계란 질량의 무게중심을 찾아내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계란을 바로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계란을 잡고 힘차게 바닥을 내리쳐 껍질이 깨어지게 만들어 바닥에 바로 세웠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방법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실에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스페인으로 가서 지원을 받았다. 그는 왜 인도에 가려고 했을까? 인도에 가면 길거리에서 발에 차이는 것이 금덩어리라는 소문이 떠돌았고, 향신료를 배에 가득 싣고 오면 수백 배 아니 수천 배가 남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인도로 가는 길(항로)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야만 되는 줄로 알았다. 아프리카 남단으로 가려면 포르투갈 해상세력이 강해서 물품을 몰수당할 뿐이니라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부득불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오랜 항해 끝에 발견한 중남이 트리니다드 앤드 토바코의 섬을 죽을 때까지도 인도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서인도제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본래 이탈리아 제노아 사람이다.

제노아에 가면 시내 한 복판에 콜럼버스의 동상이 서 있다.

비둘기 떼들이 동상 위에 앉아서 배설물을 자주 내뿜기 때문에 얼굴에는 허연 오물들이 마를 날이 없다.

지구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 이상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어쨌든 콜럼버스는 위대한 선각자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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