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려고 보니 수도꼭지 옆에 이전엔
보지 못했던 자그마한 물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혹시 바퀴벌레라도 기어 나왔나 싶어 유심히 쳐다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살짝 건드려 보았다. 금방 도망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살아 있는 놈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바퀴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장실 문은 꼭 닫아 두었다.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다시 밀쳐보니 조가비가 아닌가?
지난 토요일 딸아이와 함께 내려왔던 외손녀 세린이가 해운대 바닷가에 나갔다가 백사장을 거닐면서
무슨 보물인양 주워 왔다가 발바닥에 묻었던 모래 알갱이를 씻으면서 세면대 위에 고이 놓아두고 간 것이다.
조가비를 보니 금아의 수필집 '인연'이 생각났다.
금아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내가 찾아서 내가 주워 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珊瑚와 眞珠'라 부르련다.]
나에게 글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서영이에게 감사한다.
-皮 千 得-
바다 위 물에 뜬 배를 타고 십수 년을 돌아다녀도 조가비를 만날 수가 없다. 조개는 바다 밑 깊숙한 바닥이나 해안가에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제법 큰 소라 껍데기가 하나 있다. 필리핀 어느 시골에 갔을 때 동네 사람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소라껍데기를 귀에다 바짝 대고 있으면 멀리서 해조음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마치 산호와 진주가 노래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