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서 학생들은 교과서도 헌책을 많이 구입했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물론 참고서도 헌책방에서 샀다.
요즘은 지자체마다 도서관이 있지만 예전에는 도서관은 학교에나 있고 시립도서관 하나 정도여서
동네에서는 소설 같은 것은 책 대여점에서 돈을 주고 빌려봤다.
헌책방이 많았으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책도둑이 많았다.
나도 고3 때 절에 잠시 가 있었는데, 그때 같이 생활했던 친구가 내 책을 훔쳐 간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도 안 되는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설마 친구가 내가 공부하는 책을 훔쳐가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은 편이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교과서는 표지에 책 꺼풀을 비료포대 종이로 쌌다.
책장도 소중이 다루어 침을 묻히거나 밑줄을 긋는 등 낙서를 하는 법이 없었다. 책은 내 소유물이었지만 친구 같이 그만큼 책을 소중이 취급했다. 학기가 끝나도 내가 본 책은 절대로 팔아먹는 법은 없었다.
또한 내가 꼭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밥을 굶더라도 그 책을 사고야 말았다. 그런데 영국에 잠시 나가 있을 때
IMF사태가 일어나 헌책방에 나온 고갱 화집 (아주 두껍고 큰 책)이 있었는데 돈이 모자라 값이 더 내려가면 사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가보니 그 책이 없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데 종이류는 매주 목요일에 내 다 버리고 업체에서는 금요일 아침에 수거해 간다. 어제 오후에 헌신문지 한 뭉치를 들고 쓰레기 모으는 곳으로 내려갔더니 누군가 폐지속에 갖고 있던 책을 버려 놓았다. 호기심에 무슨 책인가 뒤져 봤더니 기계 공학도가 공부했던 책들이었다. 유체역학, 고체역학, 재료역학, 진동 공학, 자동차공학, 도학, 미적분학 용접 공학 등의 책이었고 원서도 몇 권 섞여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나왔던 LIFE 잡지의 사진들을 편집한 사진책도 4권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 자동차공학 책과 용접 공학 책 사진책을 골라 들고 왔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남의 손때가 묻은 것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젖은 크리넥스로 잘 닦아내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남아 필독 오거서(男兒必讀五車書)'라 했던가?
옛날엔 주로 남자만 책을 보고 과거를 보아 출세를 했다.
요즘은 남녀 구별이 없으니 그만큼 여권이 신장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도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헌책을 여러 차례 실어다 우리 앞집 은행 댁에 가져다주었다. 집이 좁아 더 이상 집으로 가져와서 보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은행 댁은 모 은행에 경비로 있다 퇴직하여 폐지를 주워 모아 팔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다섯 수레에 실을 책의 분량이라면 대략 몇 권쯤 됐을까? 수레 하나에 천 권율을 싣는다고 하면 오천 권이다. 내 서재에 있는 책과 바깥에 쟁여 둔 책을 합치면 아마 3천 권쯤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인도 뭄바이에 있는 간디 기념관에 들렀을 때 도서관에는 간디가 읽었던 책이 서가에 진열돼 있었는데 백 평 정도의 넓은 공간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을 구경하다가 서가에 꽂힌 책을 임의로 뽑아서 펼쳤더니 연필로 밑줄 처진 곳이 눈에 띄었다. 평소 독서를 즐겼던 간디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