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벌초하러 가면서 시간이 일러 잠시 예전에 살던 곳을 둘러 봤다.
내가 살던 우리집은 없어지고 그 터엔 감나무가 심어져 감이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당시 사립문 옆에 섰던 어린 대추나무는 고목이 되어 키가 하늘 높이 자랐고
주렁주렁 열린 대추는 햇볕을 받아 빨강색으로 윤이 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동생들이 뛰어 놀던 곳이
밭으로 변해 있었다.
인생 일장춘몽이라더니 반백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6.25사변으로 집에 불이 붙어 타버리고 할머니는 미군이 쏜 흉탄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그해에 세상을 베리시니 우리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내가 세살 때였다.
모진 게 목숨이라고 굶주린 배를 찬물로 채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앞산 바위밑에서 나는 샘물은 온 동네 사람들이 길러다 먹었다.
여름에는 이빨이 시리도록 시원하여 등물을 치면 깜짝깜짝 놀랐다.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따뜻하였고 물맛도 그럴 수 없이 좋았다.
갓 퍼온 새미 물에 물외 총총 썰어넣고 조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었다.
수도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옛 샘터는 폐정이 돼 개울가에 내팽개처져 있었다.
학생시절에 배웠던 '옛동산에 올라" 노래가락이 떠올랐다.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해 풍우인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소나무 나서 키를 재려하는구려
사진은 감나무밭으로 바뀐 우리집터
대추나무
앞산 밑에 있는 옛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