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지혜

by pahadi

어릴 적엔 부모님의 회의적이고 담담한 태도가 싫었다. 내가 아무리 호들갑 떨어도 돌아오는 건 무심한 반응. 나이가 들면서 나도 점점 모든 일이 담담해진다. 때론 무심해진다. 어른들의 이런 태도는 사실 삶의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밀물 같은 인생을 일희일비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


인생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고,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도 없다. 어떤 일이든 지나가고 무슨 일이든 흔적을 남긴다. 넘실대는 파도처럼 어쨌든 시간을 흐르고 인생도 흐른다.


견딜 수 없는 일을 소낙비 맞듯 견뎌내고, 아무리 슬퍼도 입에 꾸역꾸역 밥 한술 들이밀고, 성공보다 실패에 익숙해지고, 어떤 실패도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고, 모든 실패 앞에서 담담해지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먹먹하고, 덤덤하고, 건조한 그 어디쯤이지 않을까.


부딪치고 깨져 동글동글해진 바닷가 조약돌 같은 삶의 굳은살을 사랑한다. 그렇게 딱딱하게 제 삶을 지켜내기까지의 눈물과 인내를 존경한다. 그 굳은살 안에 가장 보드라운 옹달샘은 마르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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