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 감성 드라이브

by pahadi





준이가 태어나면서 포기한 것이 참 많다. 뜨거운 뚝배기에 얼큰한 순댓국. 좋아하는 인디밴드들의 노래. 친구들과의 약속과 수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길이의 원피스와 긴 머리. 미술관과 맛집 탐방. 고요함 속에 멍 때리는 시간.


뜨거운 뚝배기 대신 금방 식혀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골라 주문하고, 좋아하는 인디밴드들 노래 대신 핑크퐁 공룡 동요를 틀고, 친구들과 카페에서의 수다 대신 놀이터에서 만난 동병상련들과 짧은 인사치레 대화. 긴 머리는 귀 밑으로 짧게 자르고 교복처럼 입는 긴 원피스. 좋아하던 맛집 대신 아기 의자가 있고 노 키즈존이 아닌 곳을 찾아가고 미술관은 언감생심. 외로움이 웬 말이더냐 불면증이 웬 말이더냐. 잠자리에 눕는 순간 블랙아웃.


그런데 왜 나는 전보다 더 자주 웃게 되는 걸까. 왜 작은 미소 앞에서 한없이 녹아내리는 걸까. 이 뻐근하고 벅찬 기분은 뭘까. 분명 어깨는 아프고 배는 나오고 얼굴은 핼쑥한데, 집안은 엉망진창에 친구는 못 만나지 오래에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마지막 순위로 밀려났는데 살만한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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