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력으로 뱃살 부자인 나는 바지나 치마가 허리를 조이는 게 너무 싫다. 아무리 고무줄 바지더라도 허리춤에 무언가 걸쳐져 있다는 것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원피스를 입는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디자인이 아니라면 원피스는 언제 어느 때나 내 뱃살들에게 자유를 허락해준다. 상, 하 구분이 애매한 H라인이나 A라인 원피스가 좋다. 아니면 품이 넉넉해 55부터 88까지 모든 이를 아우르는 프리사이즈 원피스도 괜찮다. 허리춤이 껑충 올라온 베이비돌 원피스도 즐겨 입는다. 종종 "배에 예쁜 아기가 있나 봐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닌 걸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니까 뭐.
여기에 길이까지 길면 금상첨화다. 적어도 무릎선은 넘어야 하고 정강이 중간쯤 오는 길이면 best! 긴 원피스를 입은 나는 한껏 터프해진다. 성큼성큼 걸음도 씩씩해지고 철퍼덕 앉아 양반다리도 문제없다. 가끔 벌러덩 누울 때면 치맛자락을 이불처럼 끌어당긴다. 그 편안함이란. (물론 아무 때나 드러눕는 건 아닙니다만)
여기에 조건 한 가지를 추가하면 칠부 소매가 좋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 에어컨이 곤욕스럽다. 게다가 툭하면 감기에 걸리니 항상 조심 또 조심! 한 때는 카디건을 들고 다니면서 입었던 벗었다를 반복했는데 꽤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얇은 칠부 소매를 즐겨 입게 됐는데 웬걸 이거 아주 편하다. 여름에도 리넨이나 마가 섞인 시원한 재질을 입으면 에어컨이 없을 때도 그리 덥지 않다. 오히려 햇빛을 가려줘 덜 덥게 느껴진다. 겨울에도 아주 추운 밖이 아니라면 칠부 소매가 좋다. 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손을 많이 쓰는 일을 하니까 손목에 거추장스러운 건 딱 질색이다.
내 옷장에는 긴 원피스가 대부분인데 이런! 그것들은 또 대부분 꽃무늬, 물방울무늬, 체크무늬 세 종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옷들이 왜 다 거기서 거기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지독한 외길인생. 그중에서도 단연 높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꽃무늬다. 꽃무늬가 왜 이렇게 좋을까. 꽃무늬 패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겠다. 옷, 가방, 컵, 접시, 책, 노트... 작은 클립까지도 꽃무늬가 덕지덕지 붙어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나가다 예쁜 꽃을 보면 꼭 카메라를 들이민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든 거라던데... 누군가 열심히 꽃 사진을 찍는 내게 말했다. 아니,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는데?(아직 나이 들지 않았다고요)
나의 소소한 인생은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사는 방향으로 덜그럭 덜그럭 굴러왔다. 원피스는 그런 목표에 잘 어울리는 생활복이다. 그렇다고 게으른 실용주의자는 아니다. 나름 멋과 낭만도 놓칠 수 없다. 그래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다. (누군가 꽃무늬가 멋인가에 대해 물으면 그냥 개인 취향이라고 얼버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