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를 좋아한다. 원피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빈티지 원피스도 좋아한다. 우리 언니는 어떻게 남이 입던 옷을 입냐고 하지만 내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취향에 딱 맞는, 레어한 원피스다.
몇 개의 빈티지 원피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피스는 아이보리색 바탕에 어두운 색 작은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다. 이 원피스는 수원 행궁동 어느 빈티지 가게에서 샀다. 지금은 없어진 그 가게를 꽤 좋아했다. (왜 내가 좋아하는 가게들은 모두 사라질까.) 그날은 아기 고양이가 함께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 잃은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 키우신다고 했다. 아기 고양이는 구경하는 내 발 언저리를 맴돌며 얼굴을 비볐다. 따뜻하고 간지러웠다. 행여 고양이 꼬리를 밟을까 봐 요리조리 피하며 가게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그때 이 원피스를 발견했다. 은은한 잔꽃무늬가 마음에 들었다. 뒤에는 다섯 개의 단추가 달려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섯 개의 단추가 모두 다르다는 거였다. 정확히는 네 개의 단추 모두 모양이 다르고 두 번째 단추는 흔적만 남아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디자인으로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잃어버린 단추를 대신 해 새 단추를 달고, 또다시 남은 단추들이 사라지고 집 안 구석에 남아있던 단추를 달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았을까. 다른 때 같았으면 다른 단추가 엄청난 흠처럼 느껴졌을 텐데 이날은 달랐다. 작은 새 생명 때문이었을까? 곧 사라질 이 가게의 운명 때문이었을까? 쪼르르 달린 가지각색의 단추들이 누군가의 추억, 원피스의 인생 자락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린 단추를 또 다른 단추로 메꾸고 메꿔 입을 만큼 이 원피스를 좋아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런 극진한 애정을 받던 원피스의 한 때를 상상했다.
가격표에 적힌 가격을 지불하고 작은 봉투에 원피스를 담아 집에 돌아왔다. 내 반짇고리를 뒤져 가장 예쁜 단추를 찾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두 번째 단추 자리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했다. 그렇게 나와 이 원피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