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도서관 뒤에는 작은 산이 있다. 가을이 되면 우거진 나무들에 단풍에 내려앉아 경치가 아주 좋다. 단풍 구경 겸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그런데 아이는 멋진 가을 풍경대신 다른 것이 더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엄마! 여기 뱀이 나온대요!" 도서관 계단 옆에 뱀이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자연과 가까운 곳이니 뱀을 만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대낮에 쉽게 뱀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도서관에 부지런히 다녀봐도 뱀을 본 적 없다. 어디까지나 조심하라는 안내판인데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 뱀이 나온대요. 우리 어서 집에 가요! 위험해요." 아이는 당장 눈앞에 뱀을 본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겁에 질렸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도서관이 아이에겐 무시무시한 뱀 우리로 보이나 보다.
"뱀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지 뱀이 꼭 있다는 건 아니야. 엄마가 여기 자주 와 봤지만 뱀은 못 봤어. 그리고 뱀이 나오면 엄마가 잡아줄게. 엄마 뱀 잡기 선수야." 호들갑에 맞서 허세를 부려봤지만 별 소용없었다.
결국 눈물을 보인 아이를 안아 들었다. 도서관에 재미난 그림책과 즐거운 낙엽 놀이도 무시무시한 뱀 그림자에 잡아먹혀 버렸다. 아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엄청난 소식을 전했다. "여기 뱀이 나온대요! 뱀이 나온대요!" 다급한 목소리에도 당연히 모두들 평온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어쩔 수없이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그 뱀이 뭐라고. 공포심은 우리를 이렇게 도망치게 만든다. 뱀이 유니콘 같은 상상의 동물은 아니니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뱀 걱정을 하며 살 필요는 없지. 북적이는 도심에 길을 잃고 내려올 바보 뱀이 그리 흔한 건 아니니까.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이 이런 것이다. 절대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길을 가다 새똥을 맞는 것처럼 희박한 일. 그런 일을 걱정하며 일상이 무너뜨리는 건 새똥을 맞을까 봐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다.
내 머릿속의 수많은 뱀들을 생각해 본다. 무서움이 우스움으로 바뀐다. 다음 주말에 용기 내서 도서관에 다시 가보자. 몇 번 가다 보면 정말 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될 거야. 아이에게 건넬 말이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속에 울린다. 사실 내게 더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난 여섯 살도 아니니까 상상 속의 뱀은 이제 그만 무서워하자고. 걱정은 그만하고 이 멋진 가을이 가기 전에 제대로 즐겨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