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이에게 대뜸 사랑고백을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고작 "응"이다. 이럴 수 있나. 이건 반칙이지. "엄마 사랑해? 얼마큼 사랑해?"라고 되물으니 건성으로 답한다. "5만큼 사랑해" 쳇. 아쉽지만 오늘은 이렇게 물러난다. 5 정도면 충분하지. 아이가 아는 가장 큰 수 5 정도면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지.
아이는 1부터 10까지 셀 수 있다. 그리고 15도 읽을 수 있다.(예전에 살던 집이 15층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이에게 가장 큰 수는 5다. 산타할아버지가 장난감 5개 주셨으면 좋겠고, 주말에 아빠가 과자 5개 사줬으면 좋겠다. 5라니 참 현실 가능한 숫자다. 나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몇 개 받을 거냐고 물으면 최소 100개 정도는 말해볼 텐데. 아니면 샤넬백 하나, 아니 아니 집 한 채... 아. 이래서 내가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는구나.
10까지 세던 숫자가 금세 100, 1000으로 늘고 어른들의 숫자 욕심에는 끝이 없다. 아무리 큰 수 앞에서도 더 큰 수를 바라고, 늘 남의 숫자가 더 커 보이며 우리에게 만족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전설 속 단어가 된다. 이 욕심 덕에 어제보다 오늘 더 열심히 살아가는 거겠지만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내 생을 쏟아붓고 있다는 허무함이 든다.
곧 아이는 100까지 셀 수 있을 것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때도 있을 것이다. 채워도 채워도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도 올 것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 항상 남의 것이 크고 부럽기만 할 때 이 시절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세상이 아주 조그맣던 시절, 나는 언제나 풍족하고 행복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