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집은 참 오래된 집이었다. 중간에 한 번쯤은 리모델링을 했을 법도 한데 그런 문명의 혜택 따위는 누리지 못하고 25년이 지났다. 언젠가는 하얬을 벽지는 노랗게 뜨고, 스위치 옆엔 손 때가 가득했다. 곳곳에 수 없이 박혔다 빠진 못 자국이 지난 시간을 세어주는 것 같았다. 이 낡디 낡은 집에서 우리는 2년을 살았다. 이 집에서 아이의 200일 축하 케이크를 먹고 아이가 능숙하게 걷고, 짧은 문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니 아이의 기억 대부분은 이 집과 함께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그래서 동네 친구랄 게 없다. 대학 졸업 때까지 한 동네에서 쭉 나고 자란 남편은 친구도 많고 동네 여기저기 추억도 참 많다. 그런 게 늘 부러워서 아이가 태어나면 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사람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나. 아이가 태어나고 벌써 세 번째 이사다.
원래 미련 투성이인 나는 좀처럼 새 집에 마음이 가질 않았다. 고작 2년 살았을 뿐인데 고향처럼 그곳이 그리웠다. 아이와 함께한 추억이 가득한 그곳이. 아마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첫 친구들이 생겼을 무렵 이사를 왔으니 친구들이 참 보고 싶었을 거다. 어린이집에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가던 날, 예전 집을 지나는데 아이가 이제 우리 집이 아닌 그 집에 들어가겠다며 바닥에 드러누워 한참을 울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내 어린 시절이 겹쳐지며 나도 울고만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 예전 집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늘 아이가 말한다. "옛날 집 참 좋았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조심스레 지금 집은 어떠냐고 묻는데 아이가 환히 웃으며 답한다. "지금 집은 딱 좋아!" 역시 나보다 훨씬 낫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어차피 숙명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일. 미련 둬서 무엇하랴.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 정붙이는 게 최고지. 나도 우리 함께인 지금, 여기가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