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오늘

by pahadi

몇 년 만에 친구가 한국에 왔다. 결혼해서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와 나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는 원래 멀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구와 우주만큼 더 멀어졌. 친구를 만나기로 한 전날 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많이 변했으려나. 어색하면 어쩌지? 꼭 소개팅 전날밤 같다.


우리가 자주 가던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도 홍대에 참 오랜만에 간다. 마지막은 아마도 친구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던 그때쯤인 것 같다. 우리는 그곳에 지루했던 청춘을 남겼다. 어떻게 서울에 터를 잡을까, 누구를 만나 누구와 결혼할까,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수많은 불확실 앞에 우리는 무기력했지만 그래도 함께였다. 나의 고민이 너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불안했고 그래서 우리는 안심했다. 코로나 때문에 홍대 상권이 타격이 크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아는 그곳이 사라졌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여러모로 걱정되고 기대되는 밤이었다.


홍대역에 내리자마자 한 가지 걱정은 사라졌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은 여전히 활기찼고 개성 있고 생기가 넘쳤다.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군데군데 임대라는 글자가 눈에 띄기도 했지만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도 시끌벅적한 이야기 소리도 그리고 설레는 발걸음도 여전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 친구가 보인다. 마스크 쓴 얼굴은 처음 본다. 그래도 내 친구가 맞다. 못 알아볼 리 없지! 꼭 안아본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포옹만 빼면 모든 게 그대로였다. 어제 만난 듯 쏟아내는 쓸데없는 이야기들, 늘 똑같은 추억팔이 레퍼토리, 언제쯤 어디서 무얼 하자는 계획 없는 계획들.


모든 것이 3년 전, 5년 전, 10년 전 그대로였다. 가로수가 무성하게 자랐다 다시 작아지고, 가게들이 생겼다 사라지고, 우리가 만났다 헤어지고. 그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고 지구 반 바퀴 넘어 사는 내 친구도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여전한 이 도시도, 잘 살고 있는 내 친구도 참 기특하다. 예전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인 듯 신나게 쏟아내는 나도 기특하다.


당연한 듯 찾아온 가을도,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해내고 있는 사람들도, 어제와 다름없는 내일이 이어질 거라는 믿음도, 어쨌든 잘 굴러가고 있는 모든 것이 기특한 밤이다. 그래서 기쁘고 눈물 나고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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