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가는구나

by pahadi

어젯밤 자기 전에 준이가 "이건 비밀인데"라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비밀이라니! 언제 그런 귀여운 말은 또 배웠을까. 조그만 손을 야무지게 오므려 나의 귀와 자기 입에 바짝 붙이고 소곤소곤 비밀을 나눠준다. "엄마, 선생님이 나 금방 다섯 살 된대." 잔뜩 기대했던 나는 별거 아닌 이야기에 실망했는데 아이는 어찌나 뿌듯한 표정을 짓는지.


준이를 움직이는 마법의 단어는 "형아"다. "준이 이제 형아잖아." "형아는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하면 게임 끝이다. 이제 사촌 동생까지 생겼으니 진짜 형아다. 그런 준이가 다섯 살이 된다니 아이에게는 엄청 설레는 일일 것이다.


핼러윈이라고 들썩이는 요즘, 11월이 코 앞이다. 올해도 정말 안 남았구나. 작년과 재작년은 나이 먹기가 억울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던 시간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공평하게 한 살씩 먹어야 한다니!( 위기상황에 맞춰 집에서도 알찬 시간을 보낸 존경스러운 분들도 많지만) 신이 있다면 전 세계 사람들 모두 공평하게 2살씩 빼주면 안 될까? (준이는 무척 속상하겠지만)


2021년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2022년이 온다. 이제 내 나이에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금세 한 살 더 먹어야 한다. 그러면 내 나이처럼 느껴지는 숫자에 +1을 하면 진짜 나이가 되려나. 20대 때는 30대가 기다려졌다. 내가 갈 길을 알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 줄 알았으니까. 30대가 되면 막연히 무언가 이루었을 줄 알았다. 30대 후반을 향해가고 있는 인생이 가파른 비탈길처럼 느껴진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움직이기 바쁜 기분. 뿌연 안개 같은 지금이 40대엔 더 뿌예질 것 같아 두렵다.


불혹이라는 40대에도 여전히 여기저기 기웃대고 있겠지. 이건 의구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거 좋게 생각하자 하니,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세상 이일 저 일에 정신을 빼앗겨 헤매다가 재미난 일들이 더 많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근사한 곳에 다다르게 된다면 해피엔딩이고.


그나저나 남은 두 달 동안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2021년 새해 계획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21년을 쓱쓱 지우고 2022년이라고 적는다. 마음이 가뿐해진다. 나는 십사 개월 동안 무얼 하고, 무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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